고향에 가면
고향에 가면
  • 백인혁<원불교 충북교구장>
  • 승인 2017.01.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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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 백인혁

옛날보다는 고향 가는 길이 많이 쉬워졌습니다.

요즘은 고향에 가려면 기차를 이용해도 되고 버스나 자가용 등으로도 이동할 수 있으니 조금은 여유 부리며 느긋하게 준비를 합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에 일어나는 설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고향을 오가는 길이 고생은 되지만 살아가는 인생계획표에서 명절의 귀성을 쉽게 빼지는 못합니다.

설레는 마음을 가만히 굽어보면 어렸을 때 함께 했던 친구들 그때 뛰어놀던 골목길 해 질 녘이면 따스한 햇살이 있어 옹기종기 모여 흙담벼락을 놀이터 삼아 놀던 기억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지긋이 눈감고 즐기는 것도 재미이지요.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은 몇 명이나 올지 못 온다면 무슨 사정이 있어서인지 등등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지금의 모습도 많이 궁금합니다.

고향에 가면 이웃집 건넛집 정다운 어른들의 입을 통해 다양한 소식을 전해들을 것입니다.

옛날 일이 되었지만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마을 어른들께 세배 다니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세배하며 서로 간에 덕담을 나누고 안부를 묻기도 하고 올해에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려는지 계획을 묻기도 하고 잘된 일은 축하도 해주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격려하고 빌어주면서 남이지만 남이 아닌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타향에 가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정겨우며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포근함과 따스함을 느낍니다.

올해도 많은 분이 고향을 찾을 것입니다. 평소 부모님을 방문해 인사도 드리지만 명절에 고향을 찾는 것은 또 다른 묘미가 있으니 고향의 여러 어르신 친구 선후배들을 골고루 만나보며 남이 아닌 남들과 교류하는 체험을 해 보십시다.

교류하며 그래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가까운 사이를 멀어지고 껄끄럽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돈거래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형제지간이라도 돈거래가 명확하지 않으면 남처럼 멀어집니다. 그러니 가까운 사이에는 더더욱 돈거래는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형제들과 만날 때는 우리가 흔히 운동경기 보러 갈 때처럼 응원하는 관중으로 만납시다. 우리 편이 잘했으면, 이겼으면 하면서 목청이 떨어지라고 응원하는 팬으로 만나야 우리를 만나는 상대방이 든든하고 용기가 나며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판검사가 아닙니다. 실제 직업이 판검사인 사람도 형제간에 녹아 들어가면 판검사가 아닙니다. 고향 가서 서로 만날 때는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상대방의 사정을, 현재 살아가는 모습을, 앞으로 살아갈 구상들을 그냥 들어만 줍시다.

남들은 다 가는 고향을 못 가는 분들은 다 나름대로 말 못하는 사정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명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못 가면 전화로라도 아니면 살고 있는 가족끼리라도 명절을 기해 서로 살아가는 방향이나 삶의 계획 아니면 올해 한 해 동안 하려는 일들은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며 사는 것 같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정작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의 일이니 몰라도 된다고 또 남의 사생활이니 침해하면 안 된다고 해서 서로 간에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얼마나 힘이 드는지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사는지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지 어디로 갈지를 자세히 알았을 때 자신도 힘이 나고 어떻게 해 보겠다는 의지도 생기며 삶의 보람도 느껴집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남이 아닌 남으로 생각하며 살아갈 때 그 사람은 다 한 가족 한 형제처럼 어디 가나 환영 받고 대우하며 옆에 있고 싶어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큰 행사,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미소가 머금어지는 명절 고향방문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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