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싶던 순간들 멈출 수 없는 것
멈추고 싶던 순간들 멈출 수 없는 것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1.17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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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 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피노키오. 사랑과 우정 사이 中> 젝스키스와 SES가 돌아왔다. 90년대를 풍미했던 1세대 아이돌이 재결합하면서 옛 추억을 생생하게 들춰내는 요즘, 7인조 그룹 피노키오의 노래 <사랑과 우정사이>가 새삼스럽다.

화려했던 과거를 들춰내면서 부활을 꿈꾸는 대중예술의 흐름은 간단치 않다. 종편채널의 한계를 떨쳐버린 드라마 <응답하라0000>시리즈는 TV모니터를 통해 나름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간접체험이었다.

그러나 젝키로 환호되는 젝스키스와 원조 걸그룹 SES의 귀환은 생생한 현실이 된다.

30대 주부가 된 회사 연구원이 콘서트 예매를 위해 빠른 퇴근을 희망하고, PC방을 찾아 기어이 티켓을 확보한 뒤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주말이 지난 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평소보다 씩씩하게 월요일 출근을 한다.

젝키에 열광하며 청춘을 보냈던 그녀는 멀리 대구까지의 원정을 마다하지 않고 그들의 노래와 춤에 흠뻑 젖은 희열을 숨기지 않는다.

SES의 귀환 역시 청년을 넘기고 중년의 우울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30대를 열광하게 한다. 완전체라는 생물학적 표현을 굳이 자랑스러워하며 SES의 바다와 유진, 슈 등과 젝키의 재결합과 귀환을 반기는 사회현상은 그러나 심상치 않다.

귀환한 1세대 아이돌에 열광하는 이들은 당당하다. 학교를 땡땡이치면서, 또 거짓말을 좀 보태면서 타낸 용돈으로 티켓을 사야 했던 숨죽이는 떨림은 이제 없다. 대신 내가 번 돈으로 티켓을 사고, 각종 팬 물품은 물론 CD 역시 들을 것과 소장할 것으로 구분해 덤으로 구입한다.

그럼에도 어딘지 서글프다. 노랫말처럼 `멈추고 싶은 순간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따라서 성장을 애써 외면하거나 더는 커질 수 없는 희망의 크기를 눈치 챈 망설임과 머무름, 그리고 서성거림은 훌쩍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쓰디쓴 표상이다.

누구에게나 왕년은 있다. 다만 모자람과 쉽게 다가갈 수 없음의 애틋함 끝에 얻게 된 폭풍 같은 옛일의 추억, 그 짜릿했던 해방구는 어느덧 환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로부터 벗어나기를, 또 떨어져 나가기를 주저한다.

대중예술이 고전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가장 큰 이유는 쉽게 잊혀 진다는 데 있다. 그리고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신작들의 물량공세를 추억 하나로 감당하면서 반추를 거듭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가벼움이 대중예술품을 고전의 반열에 쉽게 오르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기도 하겠다.

사람들은 참 쉽고도 편리하게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산다.

불과 1,000일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사람들은 벌써 세월호 참사 당일 생생하게 중계됐던 VIP 보고용 영상 확보 지령을 기억하지 못한다. 언론조차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점심시간 쯤 TV를 처음 보고 심각성을 알았다”는 변명을 그대로 옮겨 전달한다.

누구에게나 `멈추고 싶은 순간들'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옛일을 회상하며 잠시나마 고된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충동은 있다.

사랑과 우정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참으로 고단하다. 그러나 역사는 멈출 수 없으며, 세상의 모든 사랑과 넘치는 우정 역시 추억으로만 회상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지울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더불어 함께하는 사람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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