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풍낙엽의 이유
추풍낙엽의 이유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7.01.1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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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

겨울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더욱 부추기는 것은 마당에 뒹구는 낙엽이다. 지난가을 최상의 자리에서 내려와 부랑아처럼 떠돌더니 마지막 자리를 찾아왔다.

거기 있어 아름다운 이유를 찾을 수가 없어 불에 살랐다.

오랜 여정을 마무리하고 흙으로 돌아갔다. 저를 살라 거름이 되었으니 그 진기眞氣로 생명이 불같이 일어나 봄을 누빌 것이다. 낙엽의 마지막 이유를 듣고 나니 흡족하다.

태우지 못한 낙엽은 겨울비가 몇 차례 내리고 나서야 숨이 죽었다. 뼈가 시린 담금질에 아집이 녹아내린다. 거름이 된다는 것은 제가 없어지는 일이다. 아니 저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더는 의미가 없는 낙엽 따위라 생각했는데 추락의 깊은 뜻이 있었다.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면 흙의 본질이 된다. 흙은 온갖 것의 마지막을 품기도 하지만, 온갖 것의 생성에너지가 된다.

낙엽은 큰 의미 안에 녹아드는 작은 요소이다.

권력에 빌붙어 전성기를 누리던 그들이 우수수 추풍낙엽이다. 호의호식하다 날벼락을 맞았다. 기둥이 무너지니 간신배들 위상도 날아가고 부질없는 낙엽 신세가 되었다. 잘못 모셨으니 죗값을 받아야 하거늘 책임회피, 책임 전가, 위선적 언변이 점입가경이다.

그들에게 희망의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소낙비 피하듯 피신했다가 영혼 없는 오뚝이로 부활하는, 그곳의 가면 놀이 이제는 염증이 난다. 패자부활전은 정당한 싸움에서 안타깝게 진 자들의 구출 작전이어야 한다.

모두가 죄가 없다는데 믿은 죄밖에 없는 국민을 죄인으로 몰아서야 되겠는가. 불면의 밤을 보내는 저 못난 위인들 사람이라면 뒤가 못내 켕길 것이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버릇이 생겼다. 진실만을 말한다는 이의 꼭뒤가 자꾸 넘겨다보인다. 청문회 걸쭉한 입담도 “옳거니.”하고 장단 맞추기가 거시기한 것이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은 술수로 보인다. 불신의 벽을 만들어버린 나도 문제다. 고개를 숙이고 계산에 골똘한 저들의 속셈도 내내 궁금하다. 이 허무한 진실이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우리는 또 절망하고 있다.

파당, 창당, 새 인물 유입, 잠룡의 출현, 의외의 인물에 대한 기대로 그곳이 부산하다. 떠도는 철새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여기저기 들쑤셔 쑥덕공론하는데 아서라, 애국은 자리가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국민과 함께하고, 국민의 권리를 대변할 청렴결백하고도 가히 칭송의 대상이 될 그 누군가가 필요하다. 부디 그가 우리의 희망이길 바란다.

낙엽은 갈 곳을 몰라 헤매다 내 집 뜰에 마지막 적을 두었다.

저를 내려놓으니 진토(眞土)가 되었다.

추풍낙엽이 되었으니 이참에 낙엽의 이유가 되라. 권력과 재물의 욕망을 내려놓고 초야로 돌아가라. 그곳에 적을 두고 혹여 지혜와 지식과 세상을 배운 바가 있거든 그대와 후손들을 위해 거름이 되라. 낙엽도 이유를 만들었거늘 만물의 영장인 그대들이 낙엽보다 못하다면야 쓰겠는가.

처음엔 가식이라 삿대질하겠지만 두고두고 후손들이 제 처신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교훈으로 삼을 것이다.

의석에 앉은 타 당파들 승자 행세하는데 “그대들은 진정 죄가 없는가?”속셈은 달리 두고 애국자인 양 각색하지 말라 충고하고 싶다. 자주 속다 보니 그대들 눈빛 또한 무서워진다.

구순 노인의 말씀이 가슴을 후빈다. “이눔, 저눔, 그눔?…, 별 수 있간디, 그놈이 그놈이지.” 나도 고개를 주억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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