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0일 … “우리는 구조된게 아니라 탈출했다”
세월호 1000일 … “우리는 구조된게 아니라 탈출했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7.01.10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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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연지민 부장(취재 3팀장)

그날, 온 국민이 구조의 희망을 품고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그날. 304명의 어린 숨들이 바다의 꽃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안도했던 아침은 시간이 지나면서 침몰하는 배와 함께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삶과 죽음,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어른들의 말에 착하게 따랐던 학생들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학여행길을 떠났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목도한 세월호 참사는 무능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대통령도 정부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숨을 죽여야 했던 이들은 국민뿐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국민 모두는 절망하고 또 절망했습니다.

요란했던 정부의 자성의 목소리는 공허한 울림만 남기더니 오히려 상처로 돌아왔습니다. 유족들이 참사의 진상을 요구할 때마다 보상금을 더 받아내려는 속셈이라며 천박한 자본의 정치논리로 생채기를 안겼습니다. 자식의 목숨 값으로 흥정한다며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말들을 쏟아내며 진실을 더 깊이 숨기고 덮어버렸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선 아픈 상처를 자꾸 들추지 말자고, 국가의 수치니까 그만 덮어두자고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은 진상조사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에 의해 표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호는 1월 10일 1000일을 맞았습니다. 바다 깊은 곳에는 9명의 실종자와 침몰한 세월호가 여전히 인양되지 못한 채 가라앉아있습니다. 사고 원인조차 명쾌하게 규명되지 못한 채 진실이 인양되길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시민 수사대보다 못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물러설 수 없는 지점에서 세월호의 염원이 촛불로 켜졌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1000일을 앞둔 지난 7일 생존학생 9명이 광화문 촛불집회 무대에 섰습니다. “친구를 물속에 두고 혼자 살아온 것이 미안하다”는 생존학생들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은 전혀 무뎌지지 않는다”고 울먹였습니다. 그리고는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모두 구조된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기울고 한순간에 물이 들어와 머리끝까지 물에 잠겨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저희를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라고 당시 참상을 들려줬습니다.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우리의 외면이 이렇게 참사로 이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7시간 동안 진행된 정부의 구조작업은 무엇이었습니까? 구사일생 바다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어떤 말로 변명을 해야 할까요?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촛불은 이념도 정치적 성향도 아닙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건 평화와 자유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촛불집회가 평화를 바탕으로 하는 것도 세월호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의 몸부림입니다.

상처는 숨길수록 병이 깊어진다는 말처럼 진실의 힘은 가린다고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지도 못하고 꺾인 세월호 꽃들은 우리의 아들과 딸, 손자라는 사실입니다. 숨기고 싶을수록 들춰내야 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지금 바로잡지 못하면 더 큰 화살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습니다. 촛불은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약속입니다. 잊지 맙시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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