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옷 입은 우체통
서리옷 입은 우체통
  • 이재정<수필가>
  • 승인 2017.01.0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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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이재정<수필가>

우체국 앞에는 우체통이 서 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보려고 빨간색의 옷을 입고 있지만 찾아주는 이들은 아주 드물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달하는 집배원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체통도 한결같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실망을 할지라도 기대를 갖고 우체통을 연다. 문을 여는 순간 쏴하다. 바깥의 공기가 더 차련만 안에서 얼음바람이 불어온다. 그 속에 들어있는 편지를 꺼내려 손을 디밀어보지만 오늘도 빈집이다. 다시 문을 닫고 돌아서는 나까지도 덩달아 외로워진다. 가끔씩 화물차 기사들의 대금청구서가 들은 편지가 나오긴 하지만 이렇게 허탕을 치는 날이 더 많다.

편지는 부치고 전해지기까지의 설레임이 있고 답장을 바라는 이의 기다림을 안다. 손전화에 자리를 빼앗긴지 오래인 편지는 우체통을 허기지게 만들고 있다.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손돌이바람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도 기다림을 접지 않는다. 곧 봄이 온다고 믿기 때문일까.

시골은 우체통만 비어있는 것이 아니다. 속이 텅 비어 외롭기는 노인들도 매한가지다. 돈이 힘 인줄 알고 있는 노인들의 통장이 비어가고 있다. 자식들이 힘들어 죽겠는 시늉을 하면 부모로서 안줄 수는 없는가 보았다. 어느 날, 아들과 딸이 어머니를 극진히 부축하며 우체국을 들어선다. 영락없이 노인의 통장을 내밀고 그들은 잔고를 0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분들의 허탈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빈 곳간이 된 노인들은 우체국에 와서 하소연을 털어놓는다. 이웃에게는 자식 잘못 키웠다고 할까봐 남 부끄러워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 분들의 말을 편지로 접수한다. 그리고는 말을 다 들어주는 걸로 위로의 소인을 찍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조금은 속이 편해진, 위안을 받은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간다. 그들의 뒤가 짠하다.

나는 그 모습이 오래오래 가시지 않는다. 하물며 자식에게 다 내어주고 생활고를 겪는 분들도 많다. 이십년을 넘도록 근무하고 있으니 이십대이던 내가 중년이 되었듯이 고객들은 돌아가신 분도 많고 노인이 되었다.

고목이 된 그들이다. 캘리포니아 국립공원의 레드우드라는 나무처럼 오래된 나무는 속에 구멍이 생겨 빈나무가 된다. 그 나무의 썩은 부분이 겉 부분까지 퍼지기 전에 썩은 속을 파내고 톱밥이나 독성을 없앤 시멘트로 속을 채워 치료를 해야 한다. 그냥 무심히 두었다가는 나무는 말라 죽게 된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던가. 사람이기 때문에 외로운 게 아니라 노인사람이기 때문에 더 외로운 것이다. 외로움도 전염된다고 한다. 전염되어 무리지어 쓰러져가는 고목이 되기 전에 나서야 한다. 빈속이 썩기 전에 관심의 톱밥을, 사랑의 시멘트로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고목이 되살아나 생기를 찾고 추운겨울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혼자 사는 집에 삭풍이 휘 지나간다. 밖으로 귀를 열어놓고는 발소리에 문을 열어보지만 매번 바람소리에 속는다. 우체통이 봄이 온다고 믿는 것처럼, 기다림을 접지 않는 것처럼 노인들도 시끌시끌한 봄날을 기다리고 있을 터다. 언젠가는 명주바람도 불어 올 것이라 믿고 있을 터이다.

오늘 아침, 서리 옷 입고 서있는 우체통이 노인들을 보는 듯 허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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