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김희상이 꿈꾸는 세상
농민 김희상이 꿈꾸는 세상
  • 임성재<칼럼리스트>
  • 승인 2017.0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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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 임성재

전국농민회 충북도연맹 사무처장 김희상은 농민이다.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용곡리에서 쌀농사와 사과농사를 지으며 이장 일도 맡고 있다. 그가 제14회 동범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시민운동가'로 선정돼 상을 받았다. 충북의 시민·문화운동의 큰 어른이신 故 동범(東凡) 최병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동범상은 한 해 동안 모범적으로 활동한 시민운동가를 선정해 시상해왔다. 그런데 농민으로서는 그가 처음으로 이 상을 받은 것이다.

김희상은 수상소감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농번기에는 외부 활동을 하기 어렵고, 농한기인 겨울철에 농민회 등 외부 활동을 몰아서 하다 보니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는데요, 하루는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아빠 취직했어요?'라고 묻더군요. 아이 눈에는 매일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아빠가 직장을 다니는 것으로 생각했나봅니다.”라고 말해 시상식장은 웃음과 가슴 먹먹함으로 가득 찼다. 그의 수상소감을 듣다가 문득 `44살 먹은 농민이,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녀를 키워야 하는 아버지가 이렇게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꿈꾸는 세상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농부가 된 것은 19년 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농민회간사로 일하다가 아예 농부가 되기로 작정을 하고 25살의 젊은 나이에 농사꾼의 길로 들어섰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골에 들어왔지만 아무런 농사경험이 없던 그에게 농부의 삶은 험난했다. 몇 년간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며 농사일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그리고 이젠 어엿한 농부가 됐는데도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5년 전에 새 집을 지었고, 아이들이 컸고, 빚이 더 늘었을 뿐이다.

쌀값의 폭락은 그를, 이 땅의 농민들을 좌절케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당시에 17만원하던 쌀값을 2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내세웠다. 그런데 해마다 쌀값은 더 떨어져 2016년에는 13만 원대로 바닥까지 떨어졌다. 농정의 실패, 아니 농정의 포기를 규탄하는 농민들의 분노는 뜨거웠다. 2015년 11월 14일 전국의 농민들은 광화문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했다. 거기에서 백남기 농민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그 날 이후 김희상은 1년 넘게 거리에서 살고 있다. 백남기 농민에 대한 폭력진압을 항의하는 집회를 꾸준히 이어왔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전국 농민들로 구성된 `전봉준 투쟁단'을 이끌며 촛불집회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일들 때문에 작년 농사는 집에 남아있는 부인과 아이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농민운동에 매달리는 것은 농업이 나라의 근간이고, 농촌이 지역공동체의 뿌리라는 신념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특용작물이나 반짝 인 기 있는 경제작물을 키워 농가소득을 올리려는 경제성 위주의 농업정책과 농민들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주는 식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정책을 반대한다. 농업의 근간이 되는 농민을 키우고 농촌을 살리는 일에 정부와 지자체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들처럼 농촌과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그렇게만 된다면 아직 우리 농촌은 희망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어디 한군데 모난 곳 없이 항상 선한 웃음을 띠고 있는 그가 오늘도 농민회 깃발을 들고 동분서주하는 것은 그 희망을 위해서다. 농촌이 조금만 더 잘 살고, 복지와 문화적 혜택이 조금 더 늘어난다면 요즘 같은 취업난시대에 젊은이들이 농사에 뜻을 품고 농촌으로 들어오고, 그렇게 인구가 늘면 시골마을에 또 다른 일거리가 생기면서 농촌이 예전의 마을공동체로 되살아 날 수 있다는 그 희망. 그리고 농민회 일 이외에 그가 요즘 골똘해있는 일은 지역교육공동체를 꾸리는 일이다. 농촌의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도 농업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산업화정책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이라면, 농촌을 살리는 정책은 주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책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농민을 지원하는 `경관 직불금제'나 `친환경 직불금제'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익형 농민월급제'를 시행하면 어떨까. 어느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청년수당을 만들어 지급하는 것처럼 충청북도와 청주시는 농업도인 이 지역의 특성을 살려 `농민월급제'를 도입한다면 농촌의 건강성 회복과 더불어 지역 경제를 살리고 행복한 도를 만드는 선진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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