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서원향약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서원향약
  • 김명철<청주 서경중 교감>
  • 승인 2017.01.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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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 김명철

청주시민의 휴식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앙공원에는 선인들의 숨결이 서린 압각수와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문, 망선루 등 역사 유적이 있다. 병마절도사영문은 목조 2층의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각지붕으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돼 있다. 그 앞에는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은행나무 압각수와 나라가 위급할 때 목숨 걸고 싸우신 조헌선생과 영규대사를 기리는 비와 한봉수 의병장 송공비, 박춘무선생의 비가 있다. 그런데 중앙공원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공원 탐방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서 있는 비석이 하나 있다. 바로 서원향약비다.

향약은 조선 중기 16세기에 농업 생산력이 증대되고, 상업의 발달 등 경제적 조건의 변화로 소농민경제의 안정을 바탕으로 한 중소지주층의 향촌 지배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다. 향촌사회에 유교적인 예속을 보급하고, 농민들을 토지로부터의 이탈을 막아 향촌사회를 공동체적으로 결속시킴으로써 체제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시행됐다고 평가되는 것이 향약이다. 향약은 시행주체와 규모, 지역에 따라 향규, 일향약속, 면약, 동약, 동계, 촌약, 촌계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다.

사림파가 정권을 장악한 선조 대에 와서 각 지방의 여건에 따라 서원이 중심이 되어 자연촌, 즉 이(里)를 단위로 향약을 시행했다. 이황, 이이 등에 의해 중국의 `여씨 향약'의 강령인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잘못은 서로 바로잡아주며(過失相規), 예속을 서로 권장하고(禮俗相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준다(患難相恤)는 취지를 살려 조선의 실정에 맞는 향약이 마련된 것이다.

특히 1571년(선조 4) 이 이 선생이 청주 목사로 부임해 `여씨향약'및 `예안향약'을 근거로 `서원향약'을 만들었는데, 조선후기에 조선의 향약으로서는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원향약의 특징은 양반, 백성, 천민 등 모든 주민을 참여시키는 계조직을 향약조직과 행정조직에 연계시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권장해야 할 `선목'18조목과 규제해야 할 `악목'23조목을 구분해 과실상규 조목과 환난상휼 계조직의 약속조목을 혼합하여 향의 규약을 만들어 운영한 것이다. `선과 악'두 편을 만들어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세칙을 규정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선에 관한 사항으로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간의 우애, 가정을 다스리는 일, 친척간의 화목, 유행에 의한 처신, 의리에 의한 자녀 규제, 청렴 절개의 고수, 은혜를 널리 베풂 등이다. 악과 관련된 사항으로는 불효, 불자, 불우, 불제와 스승에의 불공, 부부간의 무분별함, 전처에 대한 소박, 신의의 상실, 제사의 정성 부족, 예법 무시, 미신 숭상, 가족 간의 불화, 이웃 간의 우애 상실, 도박 음주에의 탐닉, 송사를 즐기는 일, 음식을 마구 먹음, 태만으로 대사를 그르치는 일 등이다.

서원향약은 조선 중기에 가장 널리 보급된 한국적 향약으로서 우리나라의 향촌실정에 맞게 만들어 본격 시행한 향약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주목할 부분은 향약의 4대 덕목 가운데 서원향약에서 처음으로 `환난상휼(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준다)'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주말에는 청주 중앙공원의 서원향약비를 찾아야겠다. 이웃 간의 정을 나누고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며 모두가 행복한 청주를 꿈꾸는 서원향약의 정신이 살아 있는 새해를 꿈꾸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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