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없는 열매
꽃이 없는 열매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 승인 2017.01.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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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 우래제 교사 (청주 원봉중)

겨울의 초입에 한적한 섬을 찾았다. 장구 모양을 닮았다는 장고도. 하루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아주 작은 섬. 한 시간 정도의 짧은 트레킹 코스 중에 한두 곳 멋진 해안 절경이 볼만한 섬. 불그스름한 작은 자갈과 고운 모래가 펼쳐진 해변이 아담한 섬이다. 해변가의 숙소 주변 무화과나무, 열매 몇 개만이 덩그러니 남아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 꽃 피는 게/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무화과/김지하)

시인은 꽃 시절이 없이 열매를 맺는 무화과가 자신의 신세인 양 비관하기도 하지만, 화려한 꽃은 없어도 열매 속에서 속 꽃 피는 무화과에 빗대어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며 암울한 앞날을 가는 자신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무화과는 정말 꽃이 피지 않을까?

꽃은 식물의 생식 기관으로 암술, 수술, 꽃잎, 꽃받침으로 되어 있다. 이 4가지를 모두 갖추면 갖춘꽃,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안 갖춘꽃으로 분류한다. 무화과는 꽃잎이 없기 때문에 안 갖춘꽃이다. 꽃잎이 없어 겉으로 보기엔 꽃도 없이 열매만 익기 때문에 꽃 없는 과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무화과 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보통 열매라고 부르는 것의 안쪽 빨간 혀 꽃 같은 열매 속살이 바로 무화과 꽃이다. 봄부터 여름에 걸쳐 잎겨드랑이에서 꽃턱이 항아리 모양으로 두꺼워져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려 보이지 않는 숨은 꽃차례를 이룬 것이다. 암·수꽃이 꽃 한 송이 안에 있으면 양성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면 단성화인데 무화과는 단성화이다. 암·수술이 퇴화한 중성화가 피기도 한다. 암꽃의 꽃덮이 조각은 3개이고 씨방과 암술대는 각각 1개이다. 무화과는 무화과좀벌레라는 아주 작은 곤충을 유인하여 수분하는데 우리나라의 무화과는 이 곤충이 없어 처녀생식(단위생식)을 하여 암꽃과 중성화가 열매를 맺는다.

무화과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무화과나무의 열매로 소아시아가 원산지이며 이집트에서 약 4,000년 전에 심은 기록이 있고 성경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재배한 과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벗은 몸을 가린 것이 바로 무화과나무 잎인데 다산과 사랑을 상징하기도 하며 무화과 열매는 오랫동안 에로문학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기원전 8세기 페르시아를 통해 중국으로 전래하였고 우리나라에는 일본과 중국에서 들어왔다.

무화과는 피신이라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있어 고기 먹은 후 무화과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며, 펙틴이 풍부해 변비에 효과적이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칠갑산 휴게소에서 무화과를 판매하고 있다. 끝물이지만 아직은 먹을 만할 것 같아 한 상자를 샀다. 달콤한 무화과 맛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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