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열다
다시 열다
  • 박명애<수필가>
  • 승인 2017.01.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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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박명애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 낮잠도 없는 편이라 무척 고통스럽다.

눈꺼풀은 묵직한데 잠자리에 누우면 정신은 점점 맑아진다. 일어나 책을 보기도 하지만 다음 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다시 눕는다. 옆 사람이 깰까 봐 뒤척이지도 못하고 곁눈으로 시계만 훔쳐본다.

도시의 밤은 잠이 없다. 문을 닫아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앰블런스며 오토바이 소음들이 불규칙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그 소음들 사이사이 끼어드는 상념들로 어지러운 가운데 전자시계 숫자가 하나씩 더디게 오름을 지루하게 지켜보다 창으로 희붐하게 스며드는 새벽을 맞는다.

어린 날에도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설치곤 했다.

겨울방학이면 으레 시골 큰댁에서 사촌들과 들로 산으로 쏘다니는 즐거움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계집애가 따라다닌다고 오빠들은 어떻게든 떼어놓으려 했지만 눈치와 고집으로 꿋꿋하게 꽁무니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어 놀다 보면 고단했다.

아궁이에 타던 장작이 잉걸불로 잦아들 무렵 고단한 몸을 누이면 등이 따끈따끈해지며 안온했다. 그런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시골의 밤은 칠흑같이 어둡고 길었다.

달이라도 뜨면 창호지에 어른거리는 참나무 그림자가 옛이야기 속 귀신으로 바뀌고 문풍지 우는 소리는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어둠 속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두려움으로 눈물이 날 무렵 희미한 여명 속에서 들려오던 소리. 꼬끼오~ 기세 있게 홰를 치며 어둠을 여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내게 안도감과 새날에 대한 기대감을 주었다.

곧이어 귀에 익은 신발소리가 주변의 소리들을 하나씩 깨우기 시작한다.

솥뚜껑 여는 소리, 싹싹 솥 가시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지면 밖으로만 모아져 있던 귀가 비로소 닫히며 늦은 잠속으로 깊이 가라앉았다.

그때 그 수탉의 길게 이어지던 울음소리는 늘 가슴에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인 새벽 새날을 열어주던 닭 울음소리는 이제 박물관의 유물처럼 고향의 소리 같은 프로그램에서나 만날까.

평범한 서민들에게 사랑받으면서도 상서로운 상징 같던 닭은 어느새 욕망의 희생물이 되어 버렸다.

유행처럼 번진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으로 해마다 수백만 마리가 생매장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차마 못 할 일을 겪는 가운데 어느새 정유년이 왔다.

사람들은 붉은 닭의 그림을 걸고 새해 꿈을 얘기한다. 카톡으로 오는 영상 카드에도 알록달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닭이 새날을 열고 있다.

노()나라 애공(哀公) 때 충신 전요(田饒)는 간신들 때문에 나랏일을 그르치는 애공을 보다 못해 벼슬을 사직하고 그 자리에 닭을 천거한데서 계유오덕(鷄有五德)이란 명구를 남겼다.

머리에 관을 썼으니 문(文)이요, 다리에 발톱이 날카로우니 무(武)이며, 적 앞에서는 물러나지 않고 싸우니 용(勇)이고, 모이를 나눠 먹으니 인(仁)이며, 밤을 지켜 때를 어기지 않고 알리니 신(信)을 의미한다.

오덕을 두루 갖춘 닭이 우렁찬 울음으로 다시 한 해를 열었으니 참담했던 일들로 상처받은 마음 잘 추스르고 모두 잃어버린 꿈을, 희망을 품을 수 있음 좋겠다.

아울러 닭의 품성을 닮은 리더가 나타나길 간절히 기원한다. 그럼 잃어버린 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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