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의 고통 10,000,000의 외침
1000일의 고통 10,000,000의 외침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7.01.03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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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열과 오한, 그리고 지끈지끈한 두통과 콧물에 시달리던 세밑의 몸살감기 기운이 신기하게도 2017년의 시작과 더불어 사라진 탓에 유달랐던 기대와 희망. 그러나 아직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1000일의 고통, 10,000,000의 외침>이라고 제목을 달아 놓고 `촛불은 아직 꺼질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바람은, 속절없이 변함없고 더 뻔뻔스러워지는 세상에 대한 간절함이겠지요.

사뭇 1,000일이 지났습니다. 팽목항 앞바다 푸르던 봄기운은 계절을 거듭 바꾸어 가며, 다시 삭풍이 이리저리 휩쓸고 지나는 겨울이 되었습니다. 그 1,000일 동안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다는 안도의 겨를도 없이 부끄러움과 회한의 슬픔으로, 또 열여덟 어린 가슴을 바다에 묻은 부모형제들은 또 그들대로 단 한 순간이라도 겨울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떠나보내고, 그렇게 가슴 속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멍울로 남아 있을 세월호의 비극이 오는 9일이면 어느덧 1,000일째입니다.

아직 세상은 부끄러움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10번을 넘긴 주말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천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종로 보신각으로 이어진 촛불의 물결은 낡은 해를 지우고 새해를 맞는 종소리와 모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새해 첫 신문마다, 중앙지이거나 지방지를 가리지 않고, 보수 혹은 진보적 성향의 구분 없이 일제히 1면에 인쇄된 `삼성'의 광고는 1천만 명을 훌쩍 넘긴 촛불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여전한 재벌의 위력을 자랑하는 듯합니다.

씁쓸하지만 아직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의도적으로 더 나빠지려는 조짐을 숨기지 않으며 다시 갈등과 분열을 노골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천만 명을 훌쩍 넘긴 촛불은 단지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 교체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성급하게 내걸린 여론조사, 그리고 대권후보에 대한 예측으로 세상의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보란 듯이 대통령을, 그리고 선출직 지도자를 잘 가려 뽑는 일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재벌독재의 시퍼런 서슬과 정경유착, 부의 편중에서 비롯되는 기이한 현대판 신분제의 혁파 없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고 확신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2017년으로 이어지는 촛불의 정신과 의미는 거기에 있고, 그래서 아직 촛불을 끌 수도, 함성을 멈출 수도 없습니다.

“말을 사주지 못해 엄마가 미안하다. 대신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게!”지난 해 광화문 광장에서의 해학과 위트는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고스란히 미래가 된다는 결연하고도 즐거운 희망입니다.

근본적인 모순과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적폐는 촛불과 함성의 간절함으로 표현되며 자기 증식하는 시민의 희망 대신 결국 또 다른 제2, 제3의 최순실과 부역자들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권력이 강하다는 것은 억압과 강제보다는 동의의 기제에 의존할 때'라고 강조한 그람시의 태제는 촛불의 경계와 바람과 닮아 있습니다.

새해 첫 달이 다 가기 전에 팽목항 그 차가운 바다의 바람을 만나야겠습니다. 거기에서 촛불을 멈출 수 없는 우리의 바람을 말하고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절실하게 기원해야겠습니다. 1,000일의 고통이 10,000,000명의 외침으로 얼마나 위로 될 수 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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