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다운 주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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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7.01.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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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권혁두 국장

새해를 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 워낙 암울했던 지난해였다. 누구라도 훌훌 털어내기가 쉽지않을 것이다. 새해를 놓고서도 어둡고 불안한 전망 일색이다. 밝은 덕담으로 새해를 시작하기가 여의찮다. 특히 경제가 그렇다. 지난해 하반기 나온 경제지표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무역규모는 2년 연속 뒷걸음질쳤고 성장률도 2년 연속 2%대에 머물렀다. 도산한 기업은 사상 최다, 청년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가계 부채 1300조원은 조만간 터질 시한폭탄이다.

조타수까지 잃은 우리 경제부처가 이 파고들을 제대로 극복할지 믿음이 가지않는다. 정부는 조선·해운업의 몰락과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총체적 무능을 드러냈다. 미덥잖기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대 그룹 중 7곳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 대기업 회장들이 대거 국회에 불려와 정경유착 혐의를 추궁받기도 했다. 권력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근대적 경영방식으로 글로벌 위기를 타개할 수 있겠느냐는 불신을 받는다.

보다 화급한 과제는 정치판에 부여됐다. 대통령 선거 조기 실시는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신속한 심리를 예고하면서 빠르면 대선 시기가 4월 말이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정치를 대신해 국정농단과 방조한 권력을 응징한 촛불광장의 최종적 성패는 올해 대선에서 어떤 지도자를 만들어 내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정치판에서는 난세에 대한 성찰과 의무감은 보이지 않고 후보들의 수 싸움과 권력욕만 넘친다. 유권자들의 역할과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차대해졌다는 얘기다.

국민은 대통령과 최순실의 부정한 커넥션보다 정유라의 입시 부정, 권력과 대기업의 야합에 더 분노하고 있다. 강자들이 부당한 방식으로 자원을 넘어 기회까지 독점하는 불공정 사회에 대한 항변이 촛불로 표출된 것이다. 해서 많은 국민은 올해 대선에서 강탈당한 희망을 되찾아 줄 리더가 탄생하길 원한다. 구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공정한 시스템을 구축할 능력자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망을 지금의 유권자 의식으로는 현실화하기 어렵다. 진영논리에서 탈피하는 일이 급선무다. 좌파 종북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거나, 독재와 친일의 후예들이 국정을 맡게 할 수는 없다는 이념의 벽을 박차야 한다. 후보의 정책을 꼼꼼히 살펴 투표하고 실천 여부를 따져묻는 이성적 잣대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한국은 노인빈곤율, 노인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악이다. 노인복지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 통계다. 30년 후면 노인인구 비율이 지금의 13%에서 26%로 급증한다. 정책의 변화가 없으면 노인들의 처지는 갈수록 악화될 공산이 높다. 이젠 노인들도 어떤 공약이 내게 유리한지 철저히 따져보고 투표장으로 나서야 한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초지일관해 온 대가로 얻은 것은 무엇인지도 냉정하게 돌아볼 일이다.

청년들의 처지도 노인과 다르지 않다. 2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청년실업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 사는 나라는 `헬 조선'이라는 자조가 넘친다. 그러나 좌절과 자학에 앞서 시민으로서의 의무인 참정권 행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정책에 자신의 이익과 입장을 반영하려는 노력은 포기하고 정부만 탓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때다.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국회는 무능을 넘어 최씨 일가의 국정농단을 방조·방기했다. 서울대 등 일류대를 나와 고시를 패스하고 판검사와 장차관에 오른 이 땅의 최고 엘리트들은 곳곳에서 최순실의 방종과 이익에 부역했다. 수년간 나라가 한 아녀자의 손바닥에서 놀아나고 있었으나 그들 중 누구하나 휘슬조차 울리지 않았다. 일류대·고시·장차관·판검사 따위의 스펙을 능력검증의 바로미터로 삼아온 구태를 이제는 떨쳐야 한다. 껍데기에 현혹되지 않고 인물의 실체를 꿰뚫을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지난해 촛불혁명이 남긴 교훈 중 하나는 주인이 주인다워야 고용인들이 복종한다는 점이다.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질 것이라는 패륜을 어떻게 잠재웠는지 기억해야 한다. 이젠 거리의 광장 대신 우리 내면에 자각의 광장을 만들고 거기서 채찍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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