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12.2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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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네티즌 수사대 자로(인터넷 필명)가 다큐멘터리 sewol X를 공개했다.

크리스마스에 맞추려 이름에 X를 넣었으나 용량이 너무 커 26일에야 공개되었다. 세 아이를 둔 40대 시민이라 밝혔지만 그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은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인터넷 여론을 조작했다. 사실이 발각되자 관련 댓글을 모두 삭제하고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자로는 삭제된 댓글 계정 주인이 국정원 요원임을 밝혀냈고 이로 인해 원세훈 국정원장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정원이 남긴 접촉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앞서 검찰은 과적과 조타 실수, 고박 불량과 선체 복원력 부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세월호가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관련자들의 진술과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다른 데서 사고 원인을 찾았다. 과적은 위험 수준이 아니었고 과도한 조타가 선체 기울기에 급격한 영향을 주지도 않으며 고박 불량과 선체 복원력도 우려할 정도가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레이더에 나타났다 사라진 괴물체에 주목했다. 사고 당시 많은 이들이 들었다는 `쿵'하는 소리는 괴물체가 남긴 접촉의 증거였다.

다큐멘터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외력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제기하고 뒷부분은 이화여대 김관묵 교수와 함께 고의 침몰이 아니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덮기 위해 여객선을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의혹은 정권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고 최근엔 최태민 일가의 사이비 종교와 관련한 인신 공양설도 등장했다. 이런 의심은 정직하지 않으며 진실 규명에도 미온적인 박근혜 정권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의도에서 다큐멘터리의 러닝 타임은 8시간 49분에 맞춰져 있다. 엉덩이 가벼운 내가 그 많은 분량을 끝까지 시청한 건 사실 왜곡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함께 울던 이들이 어느새 지겹다는 말을 하고 소풍가다 일어난 교통사고라는 폄훼도 등장했다. 보수 언론과 보수 단체는 유가족의 진상 규명 요구를 시체 장사라 조롱했고 어렵게 꾸린 특별조사위원회는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강제 해산됐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하는 사람들. 그 시도를 지켜보는 게 응원이므로 엉덩이를 뗄 수 없었다.

자로 역시 첫째 아이를 허무하게 잃었다고 밝혔다. 바다 건너 아득한 섬들이 붉은 진달래에 물들어 가던 4월 15일이었다. 4월이면 죄책감에 시달리던 자로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가족을 지켜만 봐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진실 규명 요구에 감추려고만 하는 정부를 보며 속으로 약속했다. 먼저 간 아이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사고 원인을 꼭 밝히겠다고. 지난 1월부터 밤을 하얗게 새우며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진실에 대한 무수한 접촉의 결과로 다큐멘터리는 완성되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다큐멘터리의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의 말이다. 자로의 진실 접촉 시도에도 정부는 제대로 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오히려 해군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사고 당시 정부와 해군은 해군참모총장의 생존자 구출 명령을 두 차례나 묵살했다. 그런 그들에게 훼손될 명예가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해명과 감춰진 의혹들. 자로들의 무궁한 진실 접촉 시도에 정부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지켜보는 우리 모두가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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