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까마귀
바람 까마귀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6.12.2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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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쓸쓸한 겨울 하늘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바람은 깊어진 겨울의 고삐를 잡고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욱더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웅크리며 따뜻한 곳을 찾기 바쁘다. 이럴 때는 오히려 땅속이나 썩은 나무 등걸 밑에서 겨울잠에 빠진 짐승이 부럽다.

시끄러운 세상사 귀 닫고, 입 닫고, 눈 닫은 채, 속잠에 들어 버리는 것이 좋을 수도 있으련만.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먼데 하늘에서 까마귀 한 마리 비명인 듯 소리를 지르곤 점이 되어 사라진다.

요즘 전국은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과 오리들이 연일 살처분 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경기도에서 AI에 걸리지도 않은 닭과 오리 40만 마리가 이유도 없이 살처분 되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재앙은 우리 사람의 이기심과 부주의가 불러온 결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무슨 자격으로 아무 죄 없는 짐승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일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새를 숭상하여 전설의 새인 봉황을 시조새로 여겼다.

그것은 새가 하늘과 인간을 매개해주며 하늘의 뜻을 사람에게 전해 주는 전령사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게 불청객 대접을 받는 새가 있다. 바로 까마귀다. 이때쯤 우리나라 전역에서 많이 보이는 까마귀들은 유라시아에서 추위를 피해 날아온 철새인 떼까마귀다.

그런데 먹이가 많은 도심에 몰려든 까마귀들은 전깃줄에 줄지어 앉아 차량과 사람들에게 배설물로 불편을 주고 있다. 사람들이 이 까마귀 떼들을 더 싫어하는 이유는 정부에서 급속도로 번지는 AI 사태를 철새들에게 원인을 떠넘기는 것도 한몫을 한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까마귀는 아이러니하게도 예로부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새로 알려져 고분 벽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곤 했다. 또한 우리의 태양신화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오랑 세오녀 설화>의 주인공 이름에도 까마귀 `오'자가 들어 있다.

온몸이 검은 색인 까마귀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새이기도 하다. 때문에 까마귀는 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신령스러운 능력과 죽음이나 질병을 암시하는 불길함의 상징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우리들의 정서에 자리한다.

까마귀는 여타의 새 중에서 지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칼리하리 사막에는 협잡꾼 바람까마귀가 산다.

아프리카 대륙 남서부에 펼쳐진 사막에도 겨울은 찾아오고 바람까마귀는 생존의 전략이 필요해진다. 바람까마귀는 미어캣에게 독수리가 나타났다는 경고음으로 보호해주는 척하고 먹이를 빼앗아 먹는다. 때로는 미어캣의 경계신호까지 흉내를 내어 속이기도 한다. 그런데 바람까마귀의 생존 전략은 겨울에만 사용하고 그 외에는 진짜로 독수리로부터 미어캣을 보호해주는 경계음을 낸다. 바람까마귀가 협잡꾼이긴 하지만 밉지 않은 것은 다른 누군가를 해치지 않으면서, 그것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높은 까마귀는 무리지어 다니는 습성으로 인해 군무의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울산의 태화강 삼호대숲에는 전국의 떼까마귀와 갈까마귀들 약 70%가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까마귀들이 대숲에 들어가기 전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펼치는 화려한 군무는 가히 살아있는 자연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고, 누군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까마귀.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우리 인간들의 이기적인 잣대로 들이대는 선택은 아닐까. 빈 겨울 하늘이 더욱 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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