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목요편지
안녕 목요편지
  • 김기원<시인·문화비평가>
  • 승인 2016.12.2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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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목요편지'를 연재한 지 3년이 흘렀습니다.

진정성이 녹아있는 글, 누구나 읽기 편한 글을 쓰고자 수많은 밤을 지새운 3년이었습니다.

글이 잘 써지는 날은 잘 써져서, 글이 안 풀리는 날은 안 풀려서 밤새도록 서재의 불을 밝혔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불의를 보면 일갈했고, 의롭고 선한 일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때론 주변의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을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나름 시대정신을 담아내고자 고뇌하고 탁마도 했습니다.

덕분에 많은 독자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도 받고, 애정 어린 충고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좋은 샘은 퍼내면 퍼낼수록 감로수가 나오는데, 제 글샘은 가뭄에 바닥을 들어내는 저수지처럼 나날이 메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충전이 필요한 스마트폰처럼 방전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더는 매너리즘에 빠지기 전에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지리산 종주도 하고 산티아고 순례길도 걸으면서 건강도 다지고 사색도 하며 내공을 다져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내일을 위해 밤새 충전하는 스마트폰처럼 적어도 1년 이상은 족히 충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여 오늘 정든 목요편지와 작별을 고합니다.

분신처럼 여겼던 글밭이었기에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압감에서 벗어나는 후련함도 있습니다.

원래 제 본업은 시입니다. 일주일에 두 편씩 칼럼을 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시인의 본분에 소홀해졌습니다. 아니 알량한 시심으로 시인행세를 했습니다.

이제 시의 본령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메마른 시심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다시 고운 시들이 싹트게 할 작정입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엄혹한 작금의 현실이 시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시를 씁네 하는 시인은 하늘의 별처럼 많은데 정작 시처럼 사는 시인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많으나 참스승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말입니다.

시인의 로망은 좋은 시를 쓰면서 시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니 시인의 고뇌와 번뇌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의 시름과 좌절은 시대의 아픔이 되고 시대정신의 남루를 부릅니다.

시가 죽고, 낭만이 죽고, 희망마저 시들어 버리면 남는 건 암흑천지입니다.

작금의 현실이 그렇습니다.

비선과 검은 커넥션이 암약하는 세상, 부정과 비리와 갑질이 횡횡하는 세상, 시기 질투와 탐욕이 이글거리는 세상입니다.

존중과 배려와 사랑과 희망이 압사당하고 미움과 저주와 원망과 분노가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참으로 고약한 세상입니다.

바로 잡아야 합니다. 아니 확 뜯어고쳐야 합니다.

한풀이 촛불로는, 정권교체만을 부르짖는 촛불로는 희망을 낚을 수가 없습니다.

한풀이는 또 다른 한풀이를 부르고, 정권교체는 또다시 정권교체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틀 후면 2016년이 가고 2017년이 옵니다.

촛불로 묵은해를 보내고 또다시 촛불로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못내 안타깝지만 우리는 예서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

새해에는 분노와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 평화와 희망을 쏘아 올리는 보람의 역사를 써야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니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 됩니다.

사랑과 존중과 배려를 생활화하면 모든 인연이 연인처럼 아름다워집니다.

목요편지로 맺은 그간의 인연들을 연인 같은 추억으로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독자제현들의 꿈과 사랑과 행복이 곱게 영글어가기를 희원하며 총총.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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