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잔고가 없어도 행복하다”
“통장에 잔고가 없어도 행복하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6.12.27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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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올해만큼 다사다난했던 해도 없다.

어느 해보다 찬란했을 가을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전국이 들끓었고, 급기야 수백만명의 촛불이 성난 민심을 대변했다.

어지러운 정국 속에 크게 걱정되는 것은 얼어붙은 기부 한파다.

경제불황이 지속돼도 그동안 시민들의 온정은 남아 기부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아예 지갑이 열리지 않는 모양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달 21일부터 내년 1월말까지 72일간 `희망 2017 나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올해 목표액은 3588억원. 그러나 27일 현재 모금액은 1770억원에 불과해 사랑의 온도탑은 절반을 채우지 못한 49.3도에 머물러 있다. 대전은 48억2000만원 목표 금액에 24억5181만원을 모금하면서 사랑의 온도탑은 50.8도, 충북은 64억원의 목표금액 절반도 못채운 28억6055만원을 모금해 사랑이 온도탑은 44.6도에 그치고 있다.

시민들의 지갑은 두툼하지 않다. 세금내고, 대출이자 갚고, 없는 살림에 자식 공부 시키느라 허리 펼 날이 없다. 빠듯한 살림에 허리띠 졸라매며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에게 들려온 국정농단의 주인공 최순실 이야기는 허탈감을 안겨줬다. 그녀의 벗겨진 프라다 신발 한짝이 35만원이고, 숨겨놓은 재산이 10조에 이른다는 소문이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부 천사들의 선행 소식은 가슴을 따듯하게 한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60대 기부천사는 최근 1억2000만원짜리 수표 한장을 대구 공동모금회 직원의 손에 쥐어 주었다. 신문 전단지 뒷면에 “정부가 못 찾아가는 소외된 이웃을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그가 2012년부터 5년 동안 공동모금회에 기탁한 성금은 7억2000여만원. 이름, 나이, 주소를 아는 이가 없어 그는 그저 키다리 아저씨로 불린다.

충북대학교 캠퍼스에는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한 교육독지가 묘역이 있다.

이곳엔 평생을 욕쟁이 할머니로 불리며 콩나물 장수, 국밥장수를 하며 모은 15억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김유례 할머니가 있고, 미장원과 화장품 대리점 등을 운영하며 억척스럽게 모은 10억 원대 상당의 건물을 기탁한 전정숙 할머니의 남편인 최공섭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다. 또한 행상을 하며 모은 12억원 상당의 건물을 기부한 임순득 할머니도 있다.

몇년 전 충북대에 1000만원을 기탁하겠다는 최재윤 어르신을 인터뷰하기 위해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은 20대 때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가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말을 듣고 돈을 모으면 유일한 박사처럼 기부하는 게 평생 꿈이었단다. 당시 어르신은 병원비로 돈이 모두 없어지기전에 평생의 소원을 풀고 싶어 장학금을 기탁했다고 한다. 어르신은 동 트기 전에 밭에 나가 소처럼 일해서 모은 돈을 기부하면서 “돈이 많다고 해서 남을 위해 선뜻 내놓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남을 위해 돈을 쓰지 말라는 법도 없다”며 “통장에 잔고가 없어도 행복하다”는 말로 기부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최순실이 숨겨 놓은 수조원의 재산보다도 어려운 이웃에게 손내밀 줄 아는 기부자들이 더욱 가치있다는 것을. 그래서 세밑 추위도 견딜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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