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대의 자화상
오십대의 자화상
  • 김규섭<청주시립도서관 운영팀장>
  • 승인 2016.12.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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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김규섭<청주시립도서관 운영팀장>

며칠 전 오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들 다 모였으니 빨리 나오라는 거였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친구들은 오랜만의 만남을 자축이라도 하는 듯 기분 좋게 취해있었고 이야기의 소재는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직장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까지 아주 다양했다.

치과의사인 친구는 예전에 몰랐던 외로움을 많이 느끼며 살고 있단다. 부인도 분당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어 결혼 후 지금까지 20여년을 주말부부로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저녁에는 친구들을 만나 술로 외로움을 달래고 아침에는 기계처럼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그의 일상(日常)이 되어버렸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중견간부였던 친구는 얼마 전 직장을 그만두었다. 회사의 권고도 있었고 버티자니 직원들 눈총이 따가워 더는 다닐 수가 없었단다. 그나마 대기업 경력과 전기 기술자였던 탓에 지금도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행여 일이라도 없는 날이면 한참 커가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단다.

우리 나이 오십, 이제는 건강도 챙겨야 하고 가정도 지켜야 한다. 직장에서는 상사나 부하직원들 눈치 보면서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본능적으로 알아야 하고 그 속에서 돈도 벌어야 한다.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일 년을 하루같이 힘겹게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오십대 가장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는 것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야 인생의 참맛도 느낄 수 있다. 오늘을 열심히 산다는 건 좋은 과거를 만드는 일이고, 현재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는 용기가 아니라 그 속에 나를 맡기고 함께 흘러갈 수 있는 너그러움이라는 걸 알았다.

언제부턴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싫어졌다. 귀밑에 머리털은 희끗희끗 변해있고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책을 볼 수도 없다. 가끔은 기억이 가물거려 적어놓지 않으면 약속도 잊어버리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누구도 나를 젊게 봐주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열정이 남아있다. 여전히 허리를 곧추 세워야 하는 이유다.

얼마 전부터 수필공부를 하러 다닌다. 내 삶의 기억들을 글로 쓰고 싶었다. 그곳에는 높으신 연세에도 나와 같은 꿈을 꾸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다. 교장선생님부터 대학교수, 모 은행 지점장을 역임하신 분에 이르기까지 살아오신 모습들이 참으로 다양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더 멋진 인생의 후반전을 펼쳐가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들이 존경스럽다. 이제는 나도 내 인생의 후반전을 빛내줄 가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야겠다. 그 안에서 자신을 스스로 키워나가야겠다.

오십은 자연을 닮아가는 나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 또다시 봄이 오듯이 우리의 삶도 희로애락(喜怒哀)의 순환 속에서 그 깊이를 더해간다. 아직은 삶의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만의 결과 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젊음의 끝자락과 노년의 초입에서 만난 오십대의 인생길을 주변 사람들과 즐겁게 걸어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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