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 잊지 말아야 할 일
사라지는 것… 잊지 말아야 할 일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2.27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요단상
▲ 정규호

유난히 숨을 헐떡이게 하는 세밑입니다.

한반도는 우울함과 불안함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갈수록 깊이를 더해 가고 있고, 함부로 살처분되는 오리와 닭들의 원혼은 비참합니다.

24시간으로 정한 하루하루가 이어지면서 일주일이 흐르고 그 사이 주말과 휴일, 그 고단함과 나른함이 4차례 정도 거듭하면 또 한 달이 흐릅니다.

그런 한 달이 12번 모여 한 해가 지날 뿐인데, 이맘때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배되는 심란한 마음으로 집단화된 `나'의 모습을 `우리'라는 울타리로 확인하기에 몸 둘 바를 몰라 합니다. 단지 1초가 지났을 뿐인데, 하루가 가고 한 달이 지나며, 또 한 해가 저무는 스산함으로 사람들은 자꾸 무리를 만들며 서로를 확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누구나 자기 내부와 외부 세계의 분열을 이기지 못할 때, 즉 남들과 다른 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지 못할 때 적극적으로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 한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상성'과 `보편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의 표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용선,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中> 꽤 오래전에 읽었던 글귀가 유독 사무치는 세밑입니다.

올 한 해 우리는 너무도 정상적이지 못하고, 따라서 상식을 떠나 상상조차 초월하는 일들과 마주했습니다. 주권재민은 무시됐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대통령을 초월하는 권력서열이 있음이 확인되는 이상한 나라를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늦은 가을부터 엄동설한이 지속되는 와중에 사람들은 `우리'가 되어 광화문거리, 그 광장을 촛불의 바다를 만들면서 새로운 역사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참외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보편적 농민들이 듣도 보도 못했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로 인해 졸지에 종북으로 매도되는 극단이 있었으며, 기계가 사람을 이겨 버린, 그리하여 인간의 설 자리를 의심받게 하는 알파고 역시 서기 2016년이 우리에게 안겨준 충격이었습니다. 극단의 여성혐오로 빚어진 강남역 묻지마 살인과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긴 채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과 열차 사이에 끼어 숨진 19살 청년의 비극은 우리가 가슴 깊은 곳에 새기고 또 새기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그리하여 더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비극입니다.

돌이켜 보면 올 한 해 사람 사는 세상은 참으로 모질었습니다. 걱정과 우려에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역시 대부분의 예상을 뒤집는 `정상성'의 전복으로 손꼽을 수 있습니다.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송년회이거나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자꾸만 `우리'를 만들면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은 세상의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간절한 추억이겠지요. 그러면서 부끄러운 기억을 지우고, 불쌍하고 가련했던 신세를 벗어났으면 하는 간절함도 있겠지요. 그리하여 차라리 흔적 없이 지워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 역시 세밑의 마음엔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은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 속에 묻어 둔 세월호 어린 희생자들의 원혼도 그렇고,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게 아닐 이 겨울 광장의 촛불 또한 해가 바뀌어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일들에서 희망을 찾는, 어느새 송구영신(送舊迎新)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