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나무
겨울 소나무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12.2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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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겨울이 되면 나무는 가지마다 잎이 다 떨어져 텅 비게 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겨울은 삭막하게 느껴진다.

푸른 나뭇잎이 사라지면 거무튀튀한 나뭇가지만 남게 되어 무채색의 겨울이 되기 십상이지만 여기에도 구세주는 있게 마련이다.

소나무가 바로 무채색 겨울의 구세주이다.

고송(孤松)

獨立倚孤松(독립의고송) 홀로 서서 소나무에 기대어서니
北風何蕭瑟(북풍하소슬) 북풍은 어찌 그렇게도 소슬한가
霜露且相侵(상로차상침) 서리와 이슬이 서로 부딪히니
爲爾憂念切(위이우념절) 너를 위한 근심스런 생각 간절하다
貞心良自苦(정심량자고) 곧은 마음은 정말로 절로 괴롭고
久有凌寒節(구유릉한절) 추위를 이기는 절개 오랫동안 있었다.
勖哉保歲暮(욱재보세모) 힘쓰게나, 세모에 몸을 보중하여
幽期庶永結(유기서영결) 들판의 만남 영원히 맺어지기 바라노라

세상이 온통 녹색인 철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녹색이 사라진 겨울에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 소나무이다. 조선(朝鮮)의 시인 민정중(閔鼎重)에게도 겨울의 꽃은 소나무였다.

시인은 추운 겨울날 산야를 거닐다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발견하고는 깊은 감회에 빠졌다. 삭막하기만 한 겨울 풍광에 체념하고 있던 시인에게 녹색 빛이 선연한 소나무는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시인은 우선 소나무에 기대어 서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북쪽에서 찬바람이 쓸쓸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소나무는 꿋꿋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리와 이슬도 틈만 나면 소나무를 파고들곤 하였으니, 시인의 걱정은 더욱 간절해졌다.

올곧은 마음을 지키고자 하면 고통은 저절로 따르는 법 아니던가?

그리고 소나무는 추위에 굴하지 않는 절조가 조상 대대로 있어 왔다. 그래도 시인은 조바심이 났다.

추위가 몰려오는 세모(歲暮)를 잘 버텨내야 할 터이다. 그래서 건강한 모습으로 찬바람 불고 서리 이슬 내리는 이 들판에서 만나는 기약이 오래도록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삭막하기 그지없는 겨울에 여전히 푸른 모습으로 벌판에 우뚝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겨울을 힘겹게 보내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곧은 마음과 추위에 굴하지 않는 절조는 소나무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 아니던가?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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