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할 때다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할 때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12.25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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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연지민 취재3팀장(부장)

연말 어느 인문학 모임에서 물리학자인 노 교수가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생각해 보았나요? 우리를 지금 이 모습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뜬금없는 질문에 사람들 모두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실존을 묻는 것이기도 했지만 물리학자가 던진 질문이었기에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으므로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망설이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자문자답으로 노 교수는 말했다. “많은 사람은 과거가 지금의 우리를 존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미래입니다. 미래의 꿈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것이지요. 꿈을 향해 걸어온 것이 지금의 나입니다. 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거지요.”

미래가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한다는 말이다. 즉, 미래를 설계하고 꿈꾸었던 일들을 하나 둘 실현해 나감으로써 지금의 내가 만들어지고, 가까운 내일의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미래의 꿈과 희망이 나를 노력하게 만들고,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존재론적 차원에서만 보면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나를 수평 선상에 같이 있다고 생각해야만 성립이 가능하다. 시간과 공간의 문제와 맞닥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향을 설정하고 스스로 길을 내며 가는 과정이 삶임을 생각해 볼 때 꿈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이 논리는 타당하다. 사유의 전복도 관습적인 생각을 버리면 참신하다. 나를 끌고 가는 미래는 꿈에 의해 결정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린 `지금에 충실하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겨라)을 외치며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꿈의 설계가 없다면 이 역시 헛헛한 구호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기의 중심을 잡아나가는 일이 끈끈하게 존재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세밑에 들려오는 소식이 우울하다. 탄핵정국과 비상시국으로 광장 바닥에서 보내고 있는 국민의 촛불도 안쓰럽고, 기업들의 감원 칼바람 속에 가계부채와 실업률이 늘어나는 현실 또한 씁쓸하다. 여기에 미국발 금리 인상이 예고되는 가운데 시중물가는 고공행진을, 내년의 경제상황은 더 강퍅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연말 서민들의 주머니까지 싸늘하게 만들고 있다.

위축된 경제는 사회 전반을 경직화시키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며 서로 노고를 격려해주고 즐거워야 할 모임은 줄어든 반면, 현실에 대한 고민과 암울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찾기 어렵고, 연말 송년 모임이나 소소한 가족행사도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이다. 춥지 않은 겨울 날씨에도 사회 주변적 현실체감도는 냉랭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노 교수의 말처럼 미래의 꿈이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보내고 있지만 2017년 희망을 설계하고 꿈을 꿔야 한다. 꿈꾸지 않는 이들에게 미래는 그 어떤 희망의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꿈과 희망의 끈을 놓는 순간 좌절과 열패감을 안겨줄 것이다. 대한민국의 희망을 각자의 희망으로 만들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희망의 무늬를 그리고 채워나갈 때 우리의 존재도 지금의 위치에서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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