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는 리셋하는 시기다
갱년기는 리셋하는 시기다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12.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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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느티나무 앙상한 가지에 저녁 해가 걸려 있다. 깡마른 뼈대처럼 맨몸 그대로 허옇게 드러낸 가지에 나그네처럼 까치 한 마리 쉬고 있고 그 아래 헐거운 마음으로 멀리 대청댐 물비늘을 훑는 여인이 있다. 칼바람이 귓불을 스치지만, 물리적 추위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셀카 놀이에 빠진 청소년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눈빛을 나누는 커플들, 아이 뒤를 졸졸 따르는 젊은 부모들, 우리가 걸어온 인생이 퍼즐처럼 한 자리에 펼쳐 있다. 문득 티치아노의 `인생 세 시기의 우의화'그림이 연상돼 피식 웃음이 샌다.

숲 속 한 공간에 알몸의 아기들이 서로 엉켜 눈감고 잠든 장면, 젊은 남녀가 피리를 불며 사랑스러운 눈빛을 나누는 장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백발 성성한 노인이 양손에 해골을 들고 상념에 잠긴 장면이 삼각형 구조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놀다가 피곤하면 잠자는 갓난아기 때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만이 있는 가장 순수한 상태이다. 청년기는 욕망을 꿈꾸며 경주마처럼 달리는 시기, 중년기는 현실에서 획득한 것들이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들임을 것을 깨닫는 시기, 노년기는 자신의 몸마저 자기 것이 아니라 놓고 갈 운명임을 깨닫는 대자의 시기임을 의미한다.

갱년기는 대개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지만, 단순히 물리적인 신체만을 갖고 그 시기를 정의하는 것은 다소 지엽적이다.

개미처럼 일하느라 허리 한 번 못 펴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세며 살아온 생의 반환점, 한숨 돌리니 자식들은 품을 떠나 제 갈 길을 가고 불현듯 주름진 얼굴과 삐걱거리는 몸을 한 낯선 타자 같은 자아가 보이니 놀랍지 아니한가.

갱년기는 욕망한 것들에 눌린 자신의 영혼과 육신이 탈골하는 시기이며 세상에서 키워놓은 욕망의 불꽃을 지키느라 내가 나로 살지 못해서 삐걱거리는 통증이기도 하다. 모래성이 될 욕망을 불리느라 기지개 한 번 펴지 못하고 베짱이처럼 놀이할 줄 모르고 달려온 나도 복병처럼 갱년기를 만났다. 하인리히 법칙처럼 몇 차례의 경고음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앙이 있고 학교에서 논술과 글쓰기를 가르치며, 문단 활동으로 누구보다 바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중년에 이렇듯 심한 전쟁을 치를 줄 미처 몰랐다. 불면증, 편두통, 우울증, 죽음에 대한 공포, 공황장애,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갱년기 몸살, 육신이 정신을 지배하는지 사고가 황폐해지면서 날카롭게 돌변하고 예측불허의 감정들이 들쑥날쑥 파도를 쳤다.

동의보감을 참고로 자연 식이요법과 산책을 병행하며 틈나는 대로 스트레칭을 하며 다스려온 일 년, 지금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몸에 화가 되는 음식은 자제하고 직접 만든 수제 음식을 섭취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우엉 차, 구절초 차, 라벤더 차를 번갈아 마시면서 자가 치유에 힘썼다. 저녁 식사 후 진하게 달인 백하수오 한 잔과 취침 두 시간 전에 마신 미지근한 우유 한잔의 효과일까. 벼랑 끝에서 발견한 일상들이 새롭다. 햇빛 아래서 숨 쉬는 이 시간도, 스르르 잠자리에 드는 그 시간도 감사하다.

빌딩의 크기만큼 그림자도 크듯이 욕망한 깊이만큼 불행도 깊다. 지금은 세속의 부질없는 욕망을 내려놓고 헐겁게 비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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