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고 싶은 시간
지우고 싶은 시간
  • 김용례<수필가>
  • 승인 2016.12.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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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용례

얼굴이 화끈거린다.

며칠 전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지인으로부터 시낭송을 부탁받았다. 행사 주관을 맡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얼마나 몸이 달면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부탁을 했을까. 달달 외우고 있던 몇 편의 시중에 한편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시낭송했던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을 만큼 속상하다.

참담하게 시낭송을 하고 무대를 내려오는데 뒤통수가 뜨거웠다. 시작은 무리 없이 잘 나가다가 중간에 앞뒤 단어가 꼬였다. 당황스러웠다. 대충 얼버무려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창피하지만 그렇게 속임수로 넘기고 싶지 않았다. 시낭송은 노래와 같다고 하지만 노래와 다른 감동을 표현해 내야 한다. 시 낭송은 흐름이 중요한데 한 번 꼬이면 수습이 어렵다. 시의 맛을 떨어뜨려 아무리 좋은 시라도 그 시간엔 다시 감정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낭송을 부탁받으면 시는 암송해야 하고 수필은 낭독해야 하므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막힘이 없어야 한다. 그 행사나 주인공을 빛나게 해 주여야 하는 것이 낭송자의 역할이다. 절제된 감정과 장, 단음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연습해야 한다. 성격상 대충은 못하기 때문에 내 나름 잘 될 때까지 연습한다. 나만 그러할까 다른 낭송자 들도 그러하리라. 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여러 번 낭송, 낭독을 했다.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하지 않으면 실수를 한다. 자만이었다. 여러 번 무대에 섰던 작품이고 평소에도 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사고다. 잘하던 짓도 멍석 펴놓으면 못한다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며 산다.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마지막 달에 이 무슨 망신인가. 헛웃음만 난다. 부끄러운 짓은 아니지만 속된말로 쪽팔리는 일이다. 살다 보면 힘들었던,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이 있다. 그 순간을 분리수거해서 버릴 수 있다면 흔적도 없이 버리고 싶을 것이다. 어제는 내 인생에 치명적인 사건은 아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다행인 것은 본 행사가 아닌 2부 행사라서 그나마 넘어갈 수 있었다.

능력이라는 것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시낭송은 시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다. 모든 예술행위는 연습 없이 무대에 서는 것은 사기 치는 일이다. 관중은 속일 수 있지만 자신은 속일 수 없다. 생각해보면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탁하는 것이 고마워서 시간이 되면 거절을 하지 않는다. 이것도 봉사라는 생각이다.

며칠 전 일은 지워 버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이번 일을 거울삼아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함도 진실이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 하는 일침이다.

내게 부탁을 했던 그녀의 말에 참담했던 내 심정을 조금은 위안을 받았다. 인격을 모독하거나 크게 재산피해를 끼치지 않는 실수는 하며 사는 것이 인간적이란다. “너무 완벽하면 재미없어요. 얄미워요. 선생님실수는 인간답잖아요.”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지만 그녀의 위로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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