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오리의 群舞(군무)가 두려운가
가창오리의 群舞(군무)가 두려운가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2.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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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육식에 대한 탐욕은 절대로 줄어들지 않고 인간이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에는 벌벌 떨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창궐하고 있는 와중에 내가 생각하는 화두는 이 한 문장이다.

지난 2014년의 비극이 채 지워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더 세고 빠른 놈이다. 동물원을 비롯해 방목 상태로 길러지는 토종닭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날 수 없고, 또 날지 못한 채 지상에 갇혀 있는 대부분의 조류들이 속수무책, 살(殺)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AI는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과학은 AI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는 호흡기 질환으로 정의한다. `생명체인 바이러스는 변이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 형태이며, 단백질과 효소를 사용해 증식하는데 AI의 경우 변이의 다양성이 많아진다'라고 설명한다. 과학의 수사(修辭)는 이렇듯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180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고 달걀을 외국에서 비행기로 실어 날라야 될 지경인데 원인은 그저 `철새에 의함'뿐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과학적이지 못하다.

AI가 유독 겨울철에 난리를 피우는 것도, 차가운 날씨에는 생명체의 활동이 둔해지는 상식과 더불어 동토(凍土)에서 날아 든 철새가 숙주로 고착화되는 인식은 궁색하다.

하여, 하릴없이 새벽 산책길에 동네 거리의 닭과 오리고기를 파는 집을 세어 봤더니, 5백m 남짓한 거리에 무려 12군데. 그나마 그곳에는 인기 연예인이면 빠짐없이 광고에 나서는 유명 프랜차이즈는 단 한곳도 없는데도 그러니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닭과 오리를 먹어 치운 셈인가.

`치느님'으로 풍자되면서 `치맥'을 욕망과 시름의 탈출구로 여겨 온 사이 닭들은 기껏 A4용지 한 장 가량의 공간에서 함부로 사육되며 오로지 인간의 식탐을 충족하는 매개물에 불과한 대접을 받고 있다.

행동주의 철학자 제리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절망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식량 곡물에서 사료 곡물로의 전환은 역전될 기미가 전혀 없는 채 여러 나라들에서 사료 곡물의 생산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면서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식의 1/3을 소와 다른 가축들이 먹어 치우고 있는 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다”고 경고한다.

습관적으로, 그리고 무심코 물어뜯는 치킨 한 조각에 생명존중과 동물복지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철새 탓만 하면서 육식의 탐욕으로 가득 채워졌던 자리를 인간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리고 공포에 가까운 경계로 움츠리고 있는 사이 (AI로)떼죽음 당한 철새는 아직 찾아 볼 수 없는데 인간은 아름다운 가창오리의 군무를 두려워한다. 이토록 무차별적으로, 또 잔인하게 살처분되는 판에 하늘을 날아가다 (AI 때문에)떨어져 죽은 철새 한 마리 찾기 힘든 것도 참 묘한 일이다.

날아다니는 꿈도 꾸지 못한 채 꼼짝도 못하는 지상의 얄팍한 공간에서 살아 있는 채로 박제가 되어가는 닭들과 오리의 모습은 마음껏 흐르지 못하고 가둬진 4대강 물줄기는 지나치게 닮은꼴이다.

인간이 스스로의 탐욕을 내려놓고, 강은 마음껏 흐르게 하고 동물들은 그나마 편안하고 정당하게 길러져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일, 그 본래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지만 결국은 가야 할 길이다.

광장의 촛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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