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2)
옹이(2)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6.12.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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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거실 중앙에 떡 하니 자리 잡은 탁자는 용도가 퍽 다양하다. 손재주가 좋은 남편이 전원생활을 할 때 만든 탁자다. 주방에선 밥상으로, 안방으로 옮겨지면 앉은뱅이책장으로, 거실에 있음 탁자로 이용되는 탁자는 긴 세월동안 우리와 함께 했다.

말이 가재도구이지 손 공정과정은 만만치가 않다. 모든 걸 수제로 하려니 땀방울이 송판 위로 떨어져 또 다른 무늬를 만들고 거칠어진 손과 얼룩진 작업복은 영락없는 산사나이 형색이다. 요즘 친환경 원목가구, 럭셔리한 수입 가구는 물론 고재가구 등을 손쉽게 구입을 할 수 있음에도 굳이 가재도구를 만드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나만의 것, 내 것, 우리 것. 단순하지만 소박하다는 이유다.

설계도면도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가재도구는 자존심이란다. 야산에서 손수 나무를 베어다 쪼개지 않은 통째로 된 나무를 톱으로 켜 송판을 만들어 자재를 준비한다. 제재소에서 켜는 송판처럼 반듯하지 않지만 외려 울퉁불퉁 굴곡진 것이 더 매력적으로 돋보인다. 거친 송판을 대패로 문지르고 사포로 다듬어 송판을 만들면 옹이가 보통나뭇결과 다르게 유별나고 독특한 문양으로 나타난다.

옛날 방 문짝 두 개를 경첩으로 맞대어 상판을 만들고, 상다리와 옆면은 손수 만든 옹이가 박힌 송판으로 재단한다. 탁자 다리엔 이동식 바퀴를 달아 자유롭게 옮길 수 있게 만들고, 양쪽에는 옛 문고리를 달아 손쉽게 끌고 다닐 수 있게 마무리하고. 마지막 공정으로 원목가구 광택제를 뿌려 나무의 무늬를 살렸다. 상판에 유리를 덮어 문살의 무늬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 고가구처럼 운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옹이는 나뭇가지가 부러진 자리에 생기 상처이지만 외려 그 상처가 더 빛을 발하여 가구의 디자인 효과가 나서 누구나 인테리어 자재로 선호하고 있다. 가구자재의 원목에서 옹이가 없는 무절목은 고급가구에 사용되고 있지만, 옹이가 있는 유절목은 그 무늿결이 자연 그대로의 원목 느낌이 살아있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으면 쉽게 좌절하고 쓰러지지만 옹이는 다르다. 옹이는 아름다운 이면에 자신의 상흔 같은 흔적을 보듬어 쉽게 변하거나 부서지지 않을 만큼 강도가 세다. 잘 쪼개지지도 않을뿐더러 내구성이 단단하여 불에 쉽게 타지 않는 것이 옹이다.

옹이는 데칼코마니. 세월이 만들어낸 독특한 문양, 나무를 켜보면 똑같은 무늬가 반으로 갈라져 있는 것은 마치 부모와 자식이 똑 닮은 것처럼 데칼코마니다. 온고의 세월을 묵묵히 아버지의 길을 가고 있을 가장들,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옹이가 박혀 있을까. 굳센 강인함이 옹이의 단단함과 흡사하다. 모두가 쉽게 성공하려 하고 요령을 부리며 판을 치는 세상 속이지만 담담히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는 가장들. 그 옆에 자식들도 데칼코마니처럼 닮아간다.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는 자연 앞에 굴레와 속박이 아닌 평온과 안락함으로 서로 기다려 주는 건 기다림의 여백이었다. 옹이처럼.

세상 하나뿐인 독특한 수제 가재도구는 이사할 때마다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거실 중앙에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는, 불룩하게 튀어나온 옹이가 은은한 입체감이 더 매력적인 탁자다. 손때가 묻어 가죽이 태닝된 것처럼 번들거리는 것이 편안한 식구 같다.

본디 식구란 좀 늘어진 옷을 입고 서로 숟가락 부딪치며 밥상에 국물을 흘려도 눈치 보지 않고 편안한 것처럼 꾸미지 않고 빙 둘러앉은 밥상의 풍경 아니던가.

그럼에도 장성한 지식은 떠나고 서로 바쁜 가족은 숟가락 부딪치기가 어려워지는 요즘 현실이다. 마치 깊이 박혀있는 옹이처럼 나이 든 부모만 집을 지키고 있다.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했던가. 세련되고 고풍스러운 탁자는 아니지만 가족들의 손때가 묻고 추억을 끌어안고 동행 한 탁자. 과거를 반추하면서 거실 중앙에서 동반하고 있는 탁자는 자식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기다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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