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서 슬픈 사람들에게
약해서 슬픈 사람들에게
  • 정현수<칼럼니스트>
  • 승인 2016.12.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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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 정현수<칼럼니스트>

스무 살 무렵 천장이 당구대로 보일 만큼 당구에 빠져 있었다. 주로 자장면 내기를 했지만 직장 생활을 일찍 시작한 친구들은 다방 커피를 배달시키며 어른 흉내를 냈다. 커피와 찻잔이 담긴 쟁반을 보자기로 위태롭게 감싼 다방 아가씨가 당구장에 들어서면 남자들의 시선이 온통 그리로 쏠렸다. 당구를 치면서 음험한 눈으로 흘깃거렸고 어른들의 거친 행동과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친구들은 적어도 대여섯 살, 많게는 열 살도 더 많아 보이던 그들에게 김 양, 이 양 하면서 아랫사람으로 대했고 더러는 진한 음담패설로 지분거렸다. 여성으로서 수치였겠지만 그들은 화를 내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는 같은 남자가 봐도 불쾌하다. 여성에 대한 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많이 비뚤다. 여성 대부분은 약하고 현명하지 못하며 주체적이지도 않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편견을 숨기고 있다. 외국 출장에서 못생긴 여자가 서비스는 더 좋더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사회 지도층을 자처하는 남자들의 여성 비하 발언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여성 종업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진상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이 진상들에게 돈과 권력이 주어지면 이를 양분 삼아 스스로 괴물이 된다. 양복 입은 침팬지처럼 사회적 가면을 쓰고 변이를 거듭하며 그들만의 편견을 견고하게 키워 나간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자들의 농락은 유치하다 못해 졸렬하다. 수컷이 암컷 앞에서 몸집을 부풀리거나 목청을 높여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과 권력이 여의치 않을 땐 나이까지 앞세워 항거에 익숙지 않은 여성을 제압하려 든다. 속수무책인 여성을 제물 삼아 수컷들의 정복욕을 채우려는 것이다. 특정 계층과 직업여성에 대한 차별이 마땅하다는 편견을 가진 남자들 때문에 약한 여성들은 슬프다. 작금의 국정 농단을 두고 대통령이 여성이기 때문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이들도 있다. 이런 태도는 사태의 논점을 잘못 이해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성 대통령의 과오에 성적인 비하가 없었던 점에 견주어 보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편견에 빠진 남자들은 자기보다 힘센 사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 국산 소형차를 느리게 몰면 운전자가 여성일 거라는 생각으로 뒤에서 경적을 울리고 상향등을 번쩍거리며 위협하지만 외제차나 고급 승용차일 경우엔 그렇지 않다. 이런 부류들은 티코 운전자의 존엄은 티코 크기로, 벤츠 운전자는 존엄은 벤츠 크기로 단정해 버린다. 인간의 존엄을 한낱 차종만으로 판단하는 편협한 자기모순의 단면이다. 운전이 서툰 차를 보면 운전자가 여성이 아닐까 근거 없이 생각하는 모순이 필자에게도 있다. 아내와 딸, 혹은 어머니와 여동생이 도로에서 다른 남자들에게 위협받고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남자들은 하지 않는다.

다방 아가씨처럼 약해서 슬픈 사람들, 그들에 대한 친구들의 희롱을 제지하지 않았던 내 젊은 날이 후회스럽다. 괴물로 진화한 남자들에게 내 방관과 침묵이 그만큼의 양분으로 제공된 것은 아닐까. 21살의 여성 인턴 앞에서 옷을 모두 벗었다가 국제적인 망신을 샀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창피해서 죽은 줄 알았던 그가 3년여의 은둔 생활을 마치고 출판 기념회를 열며 세상에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단체 집회에 나가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며 더욱 뻔뻔한 괴물로 진화했다. 여성 인턴과 약해서 슬픈 이 땅의 모든 여성들에게 괴물 윤창중을 대신하여 용서를 빈다. 과거의 방관과 침묵을 깊이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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