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
대나무숲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12.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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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경문왕은 왕이 되고 난 뒤 갑자기 귀가 길어져서 나귀 귀처럼 되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복두장( 頭匠)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이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 도림사 대나무숲에 들어가 “우리 임금의 귀는 나귀 귀와 같다”고 외쳤다. 그 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가 서로 부딪치며 그런 소리가 났다. 그러자 왕은 대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수유를 심게 했는데, 그 뒤로는 “우리 임금의 귀는 길다”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출처:Daum백과)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신라 제48대 경문왕에 대한 설화입니다. 위의 이야기만 들으면 별다른 재미도 없고, 왕명에 따라 대나무숲이 수유숲으로 변한 사건이나 사는 동안 비밀을 말하고 싶어 근질거리던 입을 결국 단속하지 못한 사연에 주목하게 될 겁니다.

전래동화로 바뀌어 소개된 이야기를 팔도 사투리를 어쭙잖게 섞어 조금 줄여서라도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어릴 적 기억을 찬찬히 더듬으면서요.

거시기 먼 옛날 당나귀처럼 커다란 귀를 가진 임금이 귀가 남새시러워 머리에 두건을 쓰고는 요것을 감추었는데, 우짤꼬 상투 트는 사람만 요 사실을 알고 있던 게라. 상투를 틀라치면 고저 두건을 벗어야 했응게. 그리하여 임금은 상투를 틀고 나면 고놈을 잽싸게 죽여버렸다는구먼. 어느 날인가 요 사실을 모르던 한 선비가 요 일을 자원하게 되었는데, 임금의 장대한 귀를 보게 된 선비는 지가 죽을 운명임을 직감하고는 마지막으로 늙은 엄니를 한 번만이라도 뵙고 오게 해달라고 간청했다는구먼. 임금은 절대로 요 비밀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허락을 했던 기라. 집으로 가던 선비는 입이 근질근질해 당최 참을 수가 없어서 숲 속을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다는구먼. “아이구야!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랑게.”요 소리를 들은 나무들이 화들짝 놀라 서로 입방정을 떨었고, 나무꾼은 나무들 말을 듣게 돼 고저 온 나라에 소문이 쫙 퍼졌다는구먼. 김씨 이씨 가릴 거 없이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임금님 귀 야기뿐이었다는겨. 임금님 귀가 커다라서 백성들 야기를 지대로 들을 거란 말이 거진 대부분었다는구먼. 급기야 소문은 임금 귀에까지 옮겨졌당게. 임금이 깜짝 놀랐제. 디따 큰 귀를 챙피하게 생각했는데, 백성들이 되려 좋아했기 때문이제. 임금은 궁궐로 돌아온 선비한테 벌 대신 상을 내렸다는구먼. 선비가 소문을 낸 덕분에 요런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랑게. 백성들의 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이 임금의 중요한 덕목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세계 여러 곳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비슷하게 전해지고 있기도 하는군요.

주변에 대나무숲이 있다면, 발걸음을 옮겨서 어디 한번 함께 외쳐봅시다.

왕이려이(王耳驢耳)!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힘차게 소리치신 거 맞죠? 터질 것처럼 근질거리던 입은 잠잠해졌지만, 몇 번을 둘러보아도 세상이 달라진 건 느끼지 못하겠군요. 여전히 하늘은 높고, 땅의 소문은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으니까요.

경문왕 때의 대나무숲 말고 다른 형태의 대나무숲도 있더군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용되는 공간으로서의 대나무숲입니다. 이런 대나무숲의 긍정적 효과는 왜 있는 걸까요? 위키백과에선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거나 같은 목소리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바람이 녹아있다”는 것을 다섯 가지 긍정적 효과에 넣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대나무숲이 없어도 잘만 돌아가는 세상이 그리 멀지만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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