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 YANJUAZIN
CAMINO DE YANJUAZIN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12.1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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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스페인에 유명한 순례길이 있다. 얼마 전 자전거를 좋아하는 작가에 의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것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다. 프랑스 국경에서 출발해서 스페인 북녘을 훑는 780㎣의 길이다. 정확히는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 성당까지다. 영어로는 성 제임스의 길, 불어로는 생 자크 드 콩포스텔이라고도 한다. 12제자 가운데 하나인 야곱의 무덤이 그곳에서 발견되면서 성당을 지었고 이를 기리는 순례길이 탄생한 것이다.

예수가 죽자 그의 뜻을 전하기 위해 12사도(twelve disciples)라고 불리는 제자들이 유럽전역을 돌아다녔다.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는 최북단 스코틀랜드에서도 순교했으니 그들의 여정은 정말로 멀고 험했다. 스코틀랜드 국기가 X자인 까닭이 바로 그가 X자(십자가)에서 순교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첫 자인 X 영어로는 Ch-요즘 요즘 X-mas라고 그러는데 그건 분명 Ch-mas고, 성당의 XP도 Chr을 가리킨다.)에 매달려죽기 원했기 때문이라지만, 내가 스코틀랜드 사람에게 듣기로는, 안드레아에게 `너도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이겠노라'고 하자 `내가 어찌 감히 예수님과 똑같이 죽을 수 있겠소? 삐딱하게 매달아주시오'라고 해서 X자가 되었다고 한다.-나는 개인적으로 뒤 해석이 훨씬 마음에 든다.

이렇듯 사도(使徒)의 행장(行狀: Action, 동양에서 행장은 삶의 기록을 가리킨다.)은 험난하고 거룩했다. 목숨을 건 전교(傳敎)의 삶, 진리를 전파하고자 하는 신념, 달리 말해, 도를 전하는 전도(傳道)의 역정은 기독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공통된 의미요소다. 옳았기 때문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에, 그분에게 고맙게 배웠기에, 나만 알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워 제자들은 목숨을 내놓고 그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순례는 한마디로 그들의 여정을 뒤돌아보는 길이다. 그것을 통해서 그들의 의식수준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나의 삶도 그를 닮아보려고 애써보는 것이다. 원숭이랑 놀면 원숭이를 흉내 내고, 성인이랑 놀면 성인을 흉내 내게 되지 않는가. `체험을 통한 정신의 고양'이 순례의 목적인 것이다.

`YANJUAZIN'은 선교사 묘역이 있는 서울 양화진(楊花津, 양화대교)을 가리킨다. 스페인 말에 J가 H라는 것은 축구선수들 이름을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충북대 교수 하나가 안식년에 여수 애양원을 출발하여 광주, 전주, 공주를 거쳐 양화진까지 27일간 680Km를 걸었다. 벽안의 전도사들의 행적을 찾아 떠난 길이었다. 한국을 위해 파견된 목회자들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는 일이었다. 당시 조선은 그들에게는 죽음의 땅이었다. 말대로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은 이 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그렇게 목숨을 잃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그들의 아들 그리고 아들의 아들이 한국을 위해 또다시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목사로 의사로 군인으로 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웠다. 유관순 여사도 세브란스 병원도 그들의 덕이었다.

감동적이었다. 나는 늘 종교를 역사적으로 보라고 강조한다. 그럼 관용적이 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시각도 얻는다. 종교 안에서의 싸움, 밖에서의 싸움, 그러나 시들지 않는 열정을 나는 역사 속에서 본다. 나도 서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선교사들의 삶과 죽음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것도 바로 역사와 그것을 움직이는 열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는 시코쿠 섬의 절 108개를 도는 순례코스가 있다. 이제 우리는 책 제목처럼 `양화진 순례길'이 열렸다. 정확히는 `오기완 순례길'이다. 참, 그 책에는 우연히 만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서울 가는 스님의 뒷모습 사진도 실려 있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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