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안녕들 하십니까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6.12.13 1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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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한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3년 전 일이다.

전국 대학마다 대자보가 붙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대학생들을 깨웠다.

2013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철도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수차례 불거진 대선 당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도 아님 말고 식으로 그냥 넘어갔다.

한 시골 마을에서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 주민이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88만 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대학생들은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빚으로 학업을 유지하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취업, 희망을 포기했다는 의미의 칠 포 세대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청주교대와 충북대, 청주대, 충남대 등 충청권 대학가에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게시됐다. 당시 4학년으로 졸업을 앞둔 청주대 09학번 이보람 씨는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의 죽음, 무상보육 공약과 기초연금공약 파기선언, 철도노동자들의 직위해제 등 너무나 아픈 일들 탓에 현실에 더는 안녕한 척 할 수 없어 대자보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부끄럽게도 나는 안녕하지 못했지만 안녕한 척 살아왔고, 내 한 몸 살고자 발버둥쳤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외쳤지만 정말 아픈게 무엇인지는 외면했다”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헌법에서 말하는 민주공화국이 맞는지,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나오는 게 맞는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되는 현실에서 이젠 더이상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다던 대학생들의 3년 전 외침을 되짚어보는 요즘이다.

올해도 대학가에는 3년 만에 시국선언과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대자보가 또다시 붙었다.

매년 교수들은 12월이 되면 한해를 정리하는 의미로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메르스 사태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있었던 2015년에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의`혼용무도(昏庸無道)'가 선정됐다. 2016년 희망의 문구로 교수들이 선택한 문장은 용비어천가 후반부에 나오는 구절로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풍성하다는`곶 됴코 여름 하나니'였다.

2016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농담처럼 올해는`국정농단'`꼭두각시'`비선실세'가 선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안녕하지 못한 청년들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는 설문조사가 눈길을 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와 직장인 1259명을 대상으로 `올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조사한 결과 구직자는 `구지부득(求之不得·아무리 구해도 얻지 못한다)', 직장인은 `구복지루(口腹之累·먹고 사는 데 대해 걱정한다)'를 가장 많이 선택했다.

2017년 정유년 한해는 안녕한 해였으면 한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지 고민하고, 대학생들은 꿈을 위해 도전하는 삶.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안녕한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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