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달의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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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경은<충북기독병원 원무과>
  • 승인 2016.12.1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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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배경은<충북기독병원 원무과>

금요일 저녁이 되면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우리는 평소 친한 사이가 아니었으나 군에 가고 나서 아들과 많이 친해졌다. 아침부터 종일 눈을 치운 이야기와, 함께 생활하는 동기와 선임들의 소소한 일상을 듣다 보면 충만감이 가슴에 차오른다.

집에선 무뚝뚝하고 밖으로만 돌던 아들과 이렇게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며 웃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국방부에 감사하고 싶을 지경이다. 내가 벌써 군에 간 아들과 이런 짧은 통화에도 감동하고 아들의 여자 친구를 챙기며 살게 될 줄이야.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나 역할과 자격이 주어지면서 서서히 엄마가 되어가는 훈련 속에 생의 깊이와 넓이를 깨달아가는 것만 같다.

지금도 엄마가 되는 길에 있는 훈련생처럼 느껴진다. 이제 곧 스물 네 번째 엄마 되기 훈련의 해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지경이 확장되는 오지랖 속에 정치, 경제, 사회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부조리와 싸우기도 하면서 아이들도, 나도 멈추지 않고 자란다. 그러는 동안 책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경험하게 했다. 낯선 도시에서의 육아와 결혼생활을 격려했던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고, 좋은 방어기재가 되어 주었고, 조금씩 마음이 자라도록 허락해준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요즘엔 책 말고 얼마나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오락이 많은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 책읽기는 유일한 오락이고 여유였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방법이기도 했다.

비 오는 날 아이들에게 부침개를 만들어주며 짬짬이 읽은 시집이 기억난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힘들어하거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가끔 책을 선물하곤 했다. 물론 읽는 것을 확인하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현금으로 격려의 마음을 대신한다.

책은 혼자라고 느낄 때, 정말로 혼자일 때, 항상 내 곁을 지켰다. 직장생활과 막막한 현실이 압박해 올 때마다 탐독했던 철학책은 나를 현실에서 벗어나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했고 고민으로부터 구출 받기도 했다.

아들이 군에서 페이스 북을 한단다. 여자 친구와 주1회 통화도 하지만 거의 매일 페이스 북을 통해 소통한다고 하니 요즘 군대 정말 좋아진 것 같다. 가끔 책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하려다 만다. 그곳에서 아들이 즐겨하는 무엇으로부터 격려받는다면, 뭐 아무렴 어떠랴. 상대적 박탈감으로 힘든 군 생활에 위로가 되는 것은 모두 옳다고 생각한다.

12월을 비움달이라고 한다. 비워내야만 새해의 해오름달(1월)을 품을 수 있기에 비움 달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는다.

더 좋은 엄마 되기와 깊은 성찰이 있는 책읽기, 아들과의 행복한 대화를 상상한다. 그리고 어느 생의 길목에 있을 새롭고 생기 넘치는 일상의 기적들을 기대한다.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공동체 생활이든, 불안한 미래의 고민이 그날의 전부가 된다고 해도 우리는 모두 지금의 시간을 사는 실존적 존재이며 꿈꾸는 존엄이다.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저주받은 자유'의 무한한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걸머진 불안 속에서 그럼에도 미래는 욕망의 시간이 되듯이 스스로 선택한 모든 것에 탁월함으로 지은 옷을 입혀 아름다운 하루를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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