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겨우살이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12.1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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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흔히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겨울철은 일이 없는 휴식 철로 인식된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직접적인 농사일이 아니라서 그렇지, 이런저런 일들이 널려 있는 것이 겨울철이다.

험난한 겨우살이를 위해서 할 일도 있고, 봄 농사에 대비해서 할 일도 있게 마련이다.

고려(高麗)의 시인 김극기(克己)는 겨울철의 일들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겨울(冬)

歲事長相續(세사장상속) 해마다 일이 계속 이어지니
終年未釋勞(종년미석노) 연말이 되어도 일은 끝이 없네
板簷愁雪壓(판첨수설압) 판자로 된 처마는 눈에 눌려 걱정이고
荊戶厭風號(형호염풍호) 사립문은 바람에 삐거덕거리는 게 걸리네
霜曉伐巖斧(상효벌암부) 서리 내린 새벽엔 산비탈의 나무도 베어오고
月宵乘屋綯(월소승옥도) 달밤엔 이엉 새끼도 꼬아야 하네
佇看春事起(저간춘사기) 기다리다 보면 봄 일이 시작되니
舒嘯便登皐(서소편등고) 천천히 휘파람 불며 언덕에 올라볼까


가을 수확이 끝나면 한 해 일이 마감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인의 생각은 달랐다.

한 해 일은 끝나는 일이 없이 계속 지속된다. 한 해가 끝나가는 세모라 해도 예외가 아니다. 일을 한 시도 놀 수 없는 것이다.

판자를 허술하게 엮어 만든 처마는 큰 눈에 대비해서 손을 봐 둬야 하고, 가시나무를 얽어 만든 사립문은 겨울 칼바람이 닥치면 삐걱거릴 테니, 역시 미리 단단하게 묶어 놓아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땔감도 미리미리 마련해 두어야 하고, 이엉을 이을 새끼줄도 꼬아 놓아야 한다.

그래서 새벽에도 달밤에도 쉴 사이가 없다. 그러니 겨울이 한가한 철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바쁘게 겨울을 지내면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봄 농사가 성큼 코앞에 다가오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시인이 바쁜 생활에 얽매여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바쁜 겨울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감회를 느릿하게 휘파람을 불면서 언덕에 올라 읊조리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일 년 사계절은 각기 나름의 일거리로 늘 분주하다. 겨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추운 날들을 무사히 나기 위해서는 분주히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사람은 늘 부지런히 살아야 함과 동시에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되돌아봄과 감회의 읊음이야말로 삶의 윤활유가 아닐 수 없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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