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만난 사람(1)
인도에서 만난 사람(1)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6.12.1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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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박윤미<충주예성여고 교사>

겁이 많아 앞산에도 혼자 못 가는 인사가 10년 전 인도를 혼자 여행했었다. 난 여행 체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기회였는데, `여행'이란 단어는 왜 이렇게 질기게 사람을 끌어당기는지, 특히 겨울이 되면 땀 흘리며 걷던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립게 또렷이 떠오른다. 내 속에도 광야를 달리고 싶은 야생마가 사나 보다.

인도는 내 첫 국외여행지였다. 서른 중반의 아줌마는 집과 직장을 중심으로 반경 수 km 이내가 세상 전부였다. 두 어린 딸들을 떼어놓고라도 꼭 가고야 말겠다는 모진 의지가 충천한 걸 보면 현실의 답답함이 그만큼 컸음이리라. 방학마다 배낭여행을 다니던 동료에게 우리나라가 아닌 어느 곳에라도 데려가 달라고 하였더니 가고 싶은 곳을 정해보라고 했다. 세계지도를 펴놓고 보니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또는 너무 많았다. 그러다가 정한 것이 인도였다.

동료는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주변에는 친구랑 간다고 말하고 커다란 배낭을 둘러메고 혼자 나섰다. 여행프로그램은 항공이 전부였고 안내자가 일주일 동안 동행하는 조건이었다. 델리에서 아그라와 자이푸르까지 이동하는 동안 인도의 문화, 현지 음식과 식당 예절, 기차 노선 보는 법, 쇼핑하는 것, 숙소 잡는 것을 익히게 되었다.

일주일 뒤, 기차 뒤로 걱정스레 흔들어주는 손이 멀어지고 이국에서 드디어 혼자가 되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왜 가는가? 기차 안에서도 내내 심란했지만, 뭄바이역에 내리니 더욱 막막하여 배낭을 메고 한참을 길 한가운데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난 내 나라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어교사에 배낭여행 전문가인 동료만 믿고 여행 전 공부도 안 하고 경험 밑천도 전혀 없는 채 낯선 곳에 던져진 나는 이제 목적지도 걷는 속도도 스스로 정하고 모든 순간 혼자 부딪혀야 한다. 우선 역으로 돌아가 아우랑가바드행 야간기차를 예매했다. 가난한 여행자의 설명서대로 오늘 밤 잠자리를 해결한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나와서 큰길을 따라 씩씩하게 걸었다. 지도를 보며 서서히 나아갔다. 시장도 구경하고 과일도 사 먹고 식당에 가서 밥도 먹었다. 최대한 자신에게 의연하게 보이려고 애쓰면서.

그날 밤 아우랑가바드로 향하는 기차의 2층 침대에 누웠는데, 배낭과 복대가 무사한지 깨고 잠들고를 반복하며 밤새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새벽 네 시에 목적지에 도착하여 난감했다. 여행객을 끄는 호객꾼들이 우르르 몰려 왔지만, 그 누구도 믿고 따라갈 수 없었다. 혼자 철로 옆 벤치에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북극성을 찾아보았으나 연무 낀 하늘에 보이는 몇 개의 별은 우리나라에서 보는 하늘과 너무 달라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흐르는 게 시간이다. 먼 하늘에서 뻗는 밝음이 서서히 그러면서도 제법 빠르게 달려와 어둠을 거두어냈다. 어느새 새벽다운 신선한 공기와 빛이 가득했다. 역사를 꽉 메웠던 부랑자들은 사라지고, 나는 배낭을 메고 역사를 빠져나왔다. 역 앞의 큰 나무를 점령한 이국적인 새떼가 나무를 맴돌며 허술한 나그네를 향해 자신들이 이곳의 원주민임을 주장하듯 큰 소리로 울어댔다. 한 음 한 음 나를 공명하던 그 소리는 얼마나 강렬하게 내 몸에 새겨졌는지,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왜 가는가? 끊임없이 내면에서 이어지던 질문과 함께 지금도 귓가에서 생생하게 울리곤 한다.

그렇지만 지금 무엇보다 그리운 것은 이 낯선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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