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간의 여행
4주간의 여행
  • 강근실<청주소년원 사회정착계장>
  • 승인 2016.12.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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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강근실<청주소년원 사회정착계장>

요즘 우리 사회는 지도자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여러 가지 대내외적인 불안 요소가 많은데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빨리 안정을 찾고 분노의 마음이 잦아들어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기심을 버리고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국민의 삶이 힘들어지듯이, 가정에서 가장이 중심을 잃으면 자녀가 상처받고 아파해야 한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미평여자학교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아름다운 꿈을 키워야 하는 10대 여자 아이들이 비행을 저질러 사회로부터 일정 기간 격리되어 자신의 지난 과오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확신을 키우는 법무부 소속 교육시설이다.

내가 여기서 만난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상처투성이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 유독 옹이처럼 기억에 남는 열다섯 살 그 아이의 넘칠 것만 같은 눈망울이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유아기 때 엄마의 가출로 시작된 양육환경의 급격한 변화, 삶의 대부분을 술독에 빠져 살다가 결국 교도소에 가버린 아빠 때문에 상처의 골은 한없이 깊어졌다. 마지막 남은 끈은 노동력도 없고 자신의 몸 하나 가누기에도 힘겨운 할머니였다. 자존감이 바닥일 수밖에 없었던 아이는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해 외톨이가 되었고, 학교에서 왕따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뛰쳐나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어울려 비행을 저지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잔뜩 긴장하고 심하게 눈치를 보던 아이와 4주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번 여행의 길동무이고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 2주차가 될 무렵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개별상담과 미술치료를 통하여 참았던 눈물도 실컷 흘렸고, 분노조절·극기훈련과 명상을 하며 부끄러운 자신과 마주 서보고, 한계를 경험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인내심의 한계를 넘으려는 의지도 불태웠다. 제멋대로 살다 정해진 공간에서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생활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인데, 가끔 던지는 긍정적 강화가 약이 되었는지 잘 참아내며 힘든 여행을 계속해주었다.

4주간 여행의 종착역에 도착하여 그리던 할머니를 다시 만난 자리에서 오카리나로 어머니 은혜를 연주하고, 감사와 다짐이 담긴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아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일에 사회적 관심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할머니 손을 잡고 변한 것 하나 없는 갑갑한 환경으로 돌아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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