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
옹이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6.12.0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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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임현택<수필가>

황토찜질방을 찾았다. 그곳의 너른 나무탁자 밑동에는 옹이가 기이한 문양으로 세월이 만들어낸 흔적을 특이한 자태로 폼 내듯 박혀 있다. 황토찜질방을 자주 찾는 멤버들은 땀으로 얼룩진 수건을 베개 삼아 모로 누워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인의 시어머니는 치매다. 청상과부로 오 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성공시켰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냥 치매 속으로 과거의 삶을 숨겨버렸다.

효자인 지인의 남편, 장남은 맏아들로서 늘 융숭한 대접을 받고, 막내는 어리다는 이유로 보살핌을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중간 샌드위치처럼 낀 지인의 남편은 스스로 야무지고 옹골차게 자라야만 했다. 장남이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것은 당연하며, 막내는 돌봄이 필요해 형 손을 잡고 당당하게 학교로 발길을 옮길 때, 지인의 남편은 교육보다는 온갖 집안 굿은 일을 도맡아 홀로된 어머니와 가족생계를 전담했다. 먼발치 형제들이 학교로 향하는 뒷모습을 볼 때보다 또래들이 우르르 등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부모님이 한없이 원망스러워 서러움에 울기도 많이 울었단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것보다 지게를 짊어지고 전답을 누비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지인의 남편, 굵은 손마디와 옹이처럼 투박하게 변해버린 손 때문에 악수하기를 멀리했다.

형제가 많은 그 시대, 자식은 부모를 위해 부모는 자식들 때문에 누군가는 희생해야만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때문에 의무와 책임감으로 고난에 부딪칠 때마다 잡초 근성으로 강인한 정신력과 인내력으로 이겨 내야만 했던 지인의 남편. 세월이 흐르면서 생계형으로 어렵게 돌아가는 작은 톱니바퀴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다른 형제들은 모두가 성공의 궤도를 향해 달려가는 커다란 톱니바퀴였다. 성공한 커다란 톱니바퀴와는 달리 어머니를 주축으로 겨우겨우 어쩌다 마주쳐 맞물려 돌아가는 작은 톱니바퀴는 기계속의 기어에 불과했다.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현실 가족들은 당연하게 생계는 모두가 지인 남편의 몫으로 여겼다.

홀로된 어머니와의 생활, 보호자처럼 동행하면서 가장 아닌 가장 노릇에 힘에 부쳐 술에 의존하는 날이 많았다. 주사가 늘어나 이유 없이 싸우는 날이 많아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했다. 상처 난 옹이처럼 부정하고 싶은 현실, 불평을 품고 원망이 늘어나면서 수없이 도망도 쳐보고 반항도 했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못마땅하게 여긴 어머니가 이젠 암보다도 더 무섭다는 치매에 걸렸다. 미워하면서 닮아간다고 했던가, 치매에 걸린 노모는 많은 형제 중 유난스럽게 지인의 남편만 찾으신다. 긴 삶의 여정 속에 그 많은 사연을 지우개로 지워버린 양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로지 어렵게 생활했던 그때에 머물러 있는 노모. 아마 노모도 사랑의 표현이 서툴러 되레 악다구니를 퍼붓는 날이 많았나 보다. 그렇게 서로는 조금씩,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정신이 돌아오는 날이면 도량이 크고 의협심이 강한 여걸은 사라지고 괜스레 죄인처럼 음전한 모습으로 바람 앞에 등불처럼 여려 보이는 노모다. 마른 장작처럼 말라버린 노모, 겨우 기억의 끄트머리에 앉아있는 노모 앞에선 여전히 그 옛날 아들로 돌아가 지게에 고단한 삶보다는 영웅담처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밤새는 줄 모르는 효자다.

언제부터인가 따스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나이가 되었다. 엉덩이 아래로 손을 넣고 찬기를 녹이던 그때 그 시절은 추억이란 글자 속으로 숨어 버린 지 오래다. 서구화가 되면서 안방 아랫목이란 단어조차 가물가물 잊혀가고 있는 요즘, 찜질방에 아랫목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아랫목이 그리울 때면 발길을 닿는 곳이다. 지인은 찜질방 탁자의 옹이를 보면 남편이 얼비춘다고 한다. 효자의 아내는 늘 외로운 법, 지인이 고독과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 그의 남편은 옹이가 되어 또 다른 아픔 속에 있었다. 녹록지 않은 삶은 가슴속에 맺혀 응어리가 되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지난날 흔적은 옹이처럼 맺혀 있다. 홀로된 어머니의 아픈 세월만큼 지인의 남편도 아팠던 세월, 누구보다도 더 애틋한 삶, 그것은 옹이였다. 굳은살처럼 아픔이 너무 깊이 박혀 빠지지 않는 옹이는 노모와 남편 삶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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