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등에게
고단한 등에게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12.0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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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미안하다 등아/ 오랜 세월/ 내 앞에 있는 배만 보고/ 살았구나/ 배고프면 채워주고/ 배부르면 두드려주고/ 배 아프면 어루만져주며/ 그렇게 앞만 보고 살았구나/ 여태껏 앙탈 한 번 부리지 않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너를/ 고개 돌려 보지도 못하고/ 보려고 애써 노력하지도 않은/ 너로 인해 잠도 자고/ 너를 의지해/ 무거운 짐도 지고 살았건만/ 네게는 정녕 해준 게 없구나/ 내 오늘 선한 이에게 너를 맡겨/ 정갈하게 씻고/ 시원하게 안마도 해서/ 지친 너를 위무하노니/ 등아 용서해라'

제 졸시 `등2'의 전문입니다.

등이란 몸통을 지탱하는 넓고 평평한 몸의 뒷부분 신체 부위를 말합니다. 가슴과 배의 반대쪽에 있어 마음대로 볼 수도 없고 어루만질 수도 없으며, 제 몸인데도 거울에 비춰보거나 사진을 찍어야만 볼 수 있습니다. 하는 일과 역할에 비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죠. 앞에 있는 배는 고프면 채워주고, 아프면 어루만져주고, 넥타이로 목걸이로 치장하면서 정작 자신의 몸을 지탱해주고 무거운 짐을 지는 등에게는 소홀하기 그지없습니다.

세상에는 등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님, 배우자, 멘토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지요. 이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자신이 있건만 입신하면 나 몰라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등의 고마움을 잊고 살듯이 그들의 고마움을 잊고 삽니다.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하듯 보은은커녕 가슴에 대못을 박는 패륜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죽자 살자 했던 연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중 하나가 등 돌리면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되지요.

등은 화장하거나 치장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가 진정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당당함이 묻어나는 사나이의 뒷모습도, 미끈함과 세련됨이 묻어나는 여성의 뒷모습도 모두 등에서 나옵니다. 쫓기는 자의 초조한 뒷모습도, 실의에 빠진 자의 슬픈 뒷모습도, 외롭고 고독한 자의 쓸쓸한 뒷모습도 등에서 표출되고 투영됩니다.

제 시 `등1'을 보세요.

 `등이 넓은 것은/ 외롭고 지친 사람/ 기댈 수 있게 함이다/ 등이 넓은 것은 / 사랑하는 이의 짐까지/ 짊어지라는 것이다/ 등이 굳이 넓은 것은/ 설사 휠지라도/ 너그럽게 살라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조물주는 등을 넓게 만들었습니다. 등이 넓은 것처럼 너그럽게 살라는 것입니다.내 짐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짐조차 짊어지라는 것입니다.

이번엔 `등이 내게'라는 제 시의 전문입니다.

 `등이 내게 묻는다/ 너는 한 번이라도 누구에게/ 마음 편히 기대고픈/ 따뜻한 등받이가 되었느냐/ 네가 못 보는 등을/ 긁어주고 밀어주는 이에게/ 진정 배려하며 살았느냐/ 등이 내게 말한다/ 힘들수록/ 등 돌리지 말고/ 등 떠밀지 말고/ 그럴수록/ 서로 등 두드려주고/ 받쳐주며 살라고/ 등은 또 내게 이른다/ 이제 그만/ 짊어진 짐 내려놓고/ 새털처럼 가볍게 살라고/ 때론 위기 때 등 맞대며/ 목숨 바쳐 서로 지켜주는/ 무사처럼 살라 한다'

남에게 따뜻한 등받이가 되어주지 못하고 누군가의 따뜻한 등에 기대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불리하거나 힘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등 돌리기도 했습니다.

더는 등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척, 주는 척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진정을 다해 맺은 인연에 감사하며 섬기며 살라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이젠 등이 굽은 꼬부랑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는 고전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나이가 들면 등이 오그라들고 힘이 빠지는 건 자연의 섭리입니다. 익어간다고 그럴듯하게 말은 하지만 노년들의 등은 시리고 아픕니다. 젊으나 늙으나 참으로 고단하기 그지없는 등입니다. 위무가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쯤은 서로 등을 두드려주며 `수고했다, 사랑한다' 속삭여주십시오. 그대 등과 그분의 등에게.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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