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을 거닐며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6.12.07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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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의 시 읽는 세상

 

 

 

 

 

 

 

허 형 만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아무것도 피울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겨울 들판을 거닐며
매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땅의 품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겨울 들판을 거닐며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 겨울 들판은 모두가 떠나버린 광장 같습니다. 성장을 멈추고 휑한 바람만 들락이는 모습이 쓸쓸하기만 하지요. 꽁꽁 얼어붙은 대지는 홀로된 노인처럼 고독한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견딤을 통해 건강한 생명을 품을 수 있음도 우린 압니다. 비었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으로나 채울 수 없는 들판이란 것을 겨울이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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