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는 초록이다
이끼는 초록이다
  • 최명임<수필가>
  • 승인 2016.12.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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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최명임<수필가>

세월의 무게가 버거워서 기운 것일까. 고목이 비스듬히 누웠다.

어깨에는 검불이 겹겹이 쌓였고 검버섯도 피었다. 움푹 파인 옆구리에 터를 잡고 작은 생명이 들락거린다. 풀씨가 날아와 싹을 틔우고 열매도 맺는다. 근기(根氣)도 없을 것 같은데 봄엔 청춘의 꽃보다 무게 있는 잎이 돋는다. 백발의 지혜 속에 평화로운 일상이 아름답다.

지혜는 빛나는데 백발이 안타깝다. 하여 이끼가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얼핏 보면 고목이 초록비단을 휘감은 것 같지만 이끼의 애달픈 연가다.

이끼가 꽃으로 보인 까닭은 평범하나 지순한 가슴을 지녔기 때문이다. 가는 대궁 끝에 제 꽃을 피웠다. 꽃인 줄 알았는데 포자낭이다. 꽃이 피어야 열매도 맺는 법인데 원칙을 배제하고 열매를 맺었으니 진화하지 못한 부실함인지 내실을 기한 탁월한 선택인지 알 수가 없다. 꽃을 피워야 하는 절대 원칙은 없으니 비범한 재주로 보인다. 이끼 다발 위로 개미 한 마리가 허발하다.

껄끄러운 음지에, 숲 속 우울한 나무와 젖은 바위에 단순무식하게 엉겨 있기에 맛도 멋도 없는 궁색한 풀이려니 했다. 보자고 마음먹었더니 매력이 있다. 오종종 앉은 모습이 앙증맞은 아기 뺨친다.

폭포나 계곡물이 흐르는 근처에는 군락을 이루어 무성한데 응집한 에너지와 촉촉하게 젖은 초록이 생기로 꿈틀거린다.

보아하니 평범하고 담박하나 색깔은 분명하다. 헤퍼 보이지만 되레 아름다운 이유는 음지를 마다않고 초록으로 채색하기 때문이다. 마음먹고 들여다보면 그리 아름다운 꽃도 없다.

태백산을 올랐더니 오래된 주목이 많았다. 더디 크는 주목이 그 나이가 되려면 영산靈山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감당하고 살았을까.

고사목은 천 년 지기 바람을 불러 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능선에서 살아온 세월도 길고 힘들었지만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산은 인내와 느림의 철학으로 숲을 키웠던가.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주목은 영령(英靈)이 되어서도 산을 지키고 서 있었다.

태백영산에는 오랜 시간과 시간을 잊은 고목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까마득히 더 오랜 시간을 품은 이끼가 모성처럼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초입부터 도랑물을 끼고 바윗돌에 다복하게 피었다. 바위는 꽃이 피었으니 허장성세를 부리지만 이끼는 높고 낮음도, 잘남과 못남도 따지지 않았다. 사려 깊은 안목과 진중한 처세술로 낮은 곳 음지에서 빛을 발한다.

죽어 내쳐진 나무에도 생명을 부여했다. 예전에는 나무였지만 초록비단꽃으로 환생을 했다. 나는 언뜻 윤회의 생을 읽고 간다.

우리는 평범함 속에서 번뜩이는 존재감을 발견한다. 평범함은 색깔도 없는 것 같지만 내재한 힘이 터져 나오면 왕후장상도 고개를 꺾는다. 그 위력은 평범의 옷을 입고 있다가 유사시에 존재감으로 하늘을 찌른다. 밤을 울리는 저 쩌렁쩌렁한 촛불의 함성이 그 좋은 예가 아니겠는가.

세상은 빨강으로 도색(塗色)한 꽃들의 천지가 아니다.

허무맹랑한 겉치레로 속임수를 쓰는데 불현듯 회오리바람 불어 추락하는 저 난해한 꽃잎들의 모습… 그 파탄지경이 추하기 짝이 없다. 반면 평범한 초록의 여운은 오래 남아서 사람들에게 회자한다. 지인至人은 다만 평범할 뿐이라고 했다.

2016년 암울한 겨울이다. 지인의 실종인가, 격랑의 바다를 뚫고 분연히 일어설 영웅은 어디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까. 우리는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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