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길-국민에게 배워라
돌아갈 수 없는 길-국민에게 배워라
  • 정규호<문화기획자·칼럼리스트>
  • 승인 2016.12.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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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 정규호

그들은 용감했다.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최선을 다하고 있고 또 질서 정연했다.

벌써 몇 주째, 수요일마다 비탄의 글을 쓰고 있는 내 처지가 처량하다는 느낌을 잠시라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차가운 길바닥에 주저앉아 목청이 터져라 절규하던 촛불들이 이제는 아예 집에서부터 깔개를 들고 나오고 있다.

촛불들은, 당당하게 세상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와 경이적인 국민의 모습을 선보이는 국민은, 겨울 광장에 뚜렷하게 살아있다. 조금이라도 추위를 덜어내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도 연신 어린 자식들의 맨살을 감싸주던 광장의 촛불들은 결연하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부끄러움을 뛰어넘어 혐오스러운 눈길과 대접을 피할 수 없었던 국가원수의 수치는, 촛불을 든 국민의 모습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는 변혁으로 떠받치고 있다.

국민이 힘이다. 나락으로 떨어질 나라의 위기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와 주권재민을 외치는 국민의 촛불이고, 꼼수를 미리 알아차리고 `어림없다'는 단호함으로 더 많은 국민이 12월 광장으로 모이는, 국민이 유일한 소통의 경로이자 새로운 미래의 희망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 대한민국의 숨결은 거칠고, 분노는 뜨겁기 그지없는데 정치권을 비롯한 재벌과 보수언론 등 기득권의 변화는 여전히 미지근하다. 재벌 1세에 이어 3세에 이르기까지 국정조사 또는 청문회 등에 불려나오는 세습의 악순환은 견고하다.

정치 지도자 역시 태도를 바꾸거나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고, 그 사이 우리는 세월호 참사, 그 7시간 의혹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제 살길 찾기에만 급급한 천박한 지도자들의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돌아갈 다리를 치워버렸다'거나 `탄핵 열차의 빈자리는 아직 남아 있다'는 식의 현란한 수식어 대신 뜨거운 분노와 차가운 이성으로 연일 평화시위를 이끌어 가는 국민에게 배워야 한다.

그들에게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 내려는 옹골차고 결연한 의지가 있고, 자식들에게는, 제발 다음 세대에게만은 정정당당하고 제대로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주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흔들릴 수 없는 평화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꼼수 정도는 금방 알아차리는 현명함과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한 시민의 힘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집단지성이 이미 있다.

모두가 돌아갈 길은 없다.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할 처지를 경이롭고 자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힘은 오직 국민에게 있으며, 그런 희망을 세계인의 뇌리에 새겨 줄 수 있는 슬기도 오로지 국민에게 있으니 더는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온 국민에겐 이미 타협이 없다. 그리고 당리당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치권을 더 봐줄 겨를도 없다.

그러니 촛불로 지금껏 걷어 내지 못했던 모든 왜곡과 모순의 장막을 치워버리고, 국민의 힘을 통해 부익부, 빈익빈의 허망함과 폭력과 지배, 그리고 인권유린과 경제적 독재의 사슬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은근슬쩍 국민 편으로 넘어온 보수언론과 재벌, 정치권 등 지도층의 자발적이고 뼈저린 반성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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