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1.0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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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목걸이를 보며
성화골 들녘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온몸을 매정히 훑고 지나간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매서운 찬바람을 맞고 들어온 체온이 밀려드는 후끈한 실내 온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감을 나타낸다. 온종일 추운 바람막이를 해주던 두꺼운 털스웨터가 갑자기 답답해진다. 빨리 이 거추장스러움에서 벗어나고자 서둘러 옷을 벗었다. 옷이 머리를 채 빠져 나오기도 전에 먼저 무엇인가가 "짤그락"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떨어진다.

목걸이, 목을 감아 조이고 있던 이 답답함은 목까지 올라오는 털스웨터만이 아니었다. 분명 일정한 무게로 목에 매달려 있었음에도 그 무게조차 감지하지 못할 만큼 길들여진 무딘 감각이었다. 아무런 느낌없이 길들여진 습관과 또 살아가며 맺어진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무심히 써오던 손익은 살림살이들, 그로 인해 감사함, 기쁨, 그리고 부담스러움도 분명 있었으리라.

책장 한구석에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책들도 어느 서점의 많은 책들 중에서 나의 신중한 선택이 아니었던가. 그 책에서 철없던 유년의 향수를 찾으려 했고, 청년기의 불타던 삶의 열정을 보려했었다. 생에 대한 허무, 중년의 방황을 잠재우는 중후한 너그러움도 있었건만 진실을 담고 있는 저 서적 위에는 나태와 방관이 먼지가 되어 쌓여만 있다. 위선과 허영, 그리고 탐욕이 먼저 심연 깊숙이 잠재하고 있었기에 내 것이라 했음에도 내 것이 되지 못했나 보다.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사람들과의 맺은 소중한 인연속에서 얽히고 설키는 세상살이를 하며 시기와 질투로 얼룩지게 했던 어제의 부끄러운 초상들은 이제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다. 다시 번복되는 지난날의 과오가 얼마큼 나의 삶 속에서 자신을 피폐하게 하며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연륜 이기에.

살아오는 동안 용서해 줘야 할 것이 얼마나 있으며, 또 용서받아야 할 것은 얼마나 있을까. 지천명의 고개를 목전에 둔 인생 여정을 되돌아보면 용서해야 할 부분보다는 용서받아야 할 몫이 더 많다. 살아가는 지혜와 사랑을 하는 법을 배웠기에 내가 갚아야 할 빚이 더 많은 부끄러운 삶이었다.

가끔은 봉사라는 이름으로 오만함을 감추려 위선의 탈을 썼고, 정의를 앞세워서 독선을 고수하기도 했다. 아집인걸 알면서도 타산적인 적절한 합리화로 자신을 길들이는 타성에 젖어 살고도 있었나보다.

내 목에 처음 걸릴 때만 해도 분명 차가운 금속의 무게에 거추장스럽고, 또한 사치스러운 허영심도 적잖게 반영된 목걸이였다. 허나 이질감은 신체의 일부분이 된 듯 습관처럼 받아들여 적응하고 있었다.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던 나태와 해야 했지만, 모른 척 외면해 버렸던 비굴한 도피를 적절하게 곁들이며 살아온 덜 여문 삶처럼.

이제는 누군가의 가슴에 난 시린 상처를 정말 뜨거운 사랑으로 보듬어 줄줄 알고 너그럽고 푸근한 아량으로 베푸는 삶의 모습을 내게 주어진 인생의 바구니에 곱게 담아 놓으련다.

그래서 먼 훗날 인생의 황혼기에 올라설 때 타성에 길들여져 무심했던 목걸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끊어버리는 통한의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그리고 정해년 새해에는 푸른 하늘을 한껏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커다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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