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과 갈대
뿔과 갈대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6.12.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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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소품문 (小品文)
▲ 강대헌

지난 10월에 모처럼 한국무용을 보기 전에 저녁밥을 먹다가 그만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습니다. 몇 번을 켁켁대며 목을 가다듬어 봐도 소용이 없어서 뜨거운 레몬차를 벌컥벌컥 들이마시고는 공연장인 청주아트홀에 들어갔습니다.

그날엔 세 마당의 춤판이 열렸습니다. 청주시립무용단의 `홀'과 박재희의 `승무'와 김진미 풍유무용단의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가 무대를 꽉 채웠죠.

태초에 춤이 있었나요?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춤판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홀'은 아리랑의 정서를 바탕으로 해 끈끈한 인연의 설화를 역동적으로 풀어냈고, `승무'는 법고에 살포시 날아와 앉은 나비 한 마리의 심장 소리가 얼마나 절절한지를 여실히 들려주었고,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는 잊혀져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드라마 스타일로 고발했습니다. 안무를 맡았던 김진미가 다른 춤꾼들과 어울려 춤을 추며 작품을 이끌어 나갔다는 것과 우리 시대가 풀지 못하고 있는 무거운 숙제를 극무용(劇舞踊) 형태로 옮겼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었답니다.

때론 걱정을 짊어진 종종걸음으로 무대를 옮겨다니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을 연거퍼 씻어대던 김진미의 동작은 공연이 끝나고도 자꾸만 눈에 밟혔지요.(객석 앞자리 쪽에 앉지 못한 게 유난히 아쉬운 날이었습니다. 절규와 허탄과 눈물을 흩뿌리던 그의 얼굴 표정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거든요.)

무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목을 가다듬어 보니, 생선 가시가 주던 불편함이 사라졌더군요. 춤판의 열기에 사르르 녹아버린 것 같았습니다.

성가신 생선 가시가 다시 목에 걸려도 녹아버릴 것만 같은 무대가 열린다고 합니다. 2016 충북공동창작작품 지원선정작인 김진미 풍유무용단의 춤추는 시(詩) `뿔과 갈대'가 다음주 6일에 충주문화회관에서 선을 보인다니까요.

이 작품은 충주 출신 신경림 시인의 초기 문학적 성향을 대표하는 시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다원적 형태의 무용작품으로서, 그의 다섯 편의 시 `길'과 `파도'와 `갈대'와 `떠도는 자의 노래'와 `뿔'을 원작으로 해 1960~1970년대의 사회상을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과 서예가 어우러진 새로운 형식의 창작활동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혹은 `우리는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여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는군요.

사뭇 기다려지는 `뿔과 갈대'공연에서 자신을 흔드는 것이 바람도 달빛도 아닌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던 갈대도 보고, 사나운 뿔임에도 한 번도 쓰이지 못해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지도 모르는 뿔도 보고 싶습니다.

언젠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고 썼던 킴벌리 커버거(Kimberly Kirberger)의 시구(詩句)를 본 적이 있죠. 춤추는 법을 모르는 저로선 `뿔과 갈대'를 보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쩌면 한바탕 막춤이라도 흐드러지게 출 것 같군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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