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이 되다
양치기 소년이 되다
  • 김경순<수필가>
  • 승인 2016.12.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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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 김경순

어머니는 비손하는 날이 많았다. 큰오빠가 고등학교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아버지가 한동안 집을 비우실 때, 언니가 시집을 갔을 때, 작은 오빠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내가 수캐에게 손목을 물렸을 때…, 어머니는 그때마다 뒤란 장독대에서 제일 큰 간장 항아리 위에 정한수 한 그릇과 촛불을 밝혀 올려놓고 비셨다.

`천지신명님 부디, 굽어 살펴 주시고….'

어린 나는 이유도 까닭도 모른 채 엄마 옆에서 손을 싹싹 비벼대며 엄마 흉내를 내곤 했다. 그때 밤하늘에서 휘엉청 떠 있던 달빛을 삼아 비손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성스럽기 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칠흑 같은 밤에 보는 엄마는 왜 그리 무섭게만 보였는지 모른다. 엄마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 어디선가 도깨비라도 튀어 나올까 두려워 촛불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촛불은 바람 앞에 꺼질 듯 말 듯 하면서도 커졌다가 작아지기도 하고, 가늘게 떨다가도 이내 몸을 좌우로 흔들기도 했다.

촛불이 그렇게 춤을 추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무엇을 계속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계셨다. 촛불은 그렇게 춤을 추는 듯 하다가도, 고통에 온몸을 떨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는 이내 뜨거운 촛농으로 제 몸의 형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초는 그렇게 자신을 태우며 세상의 지아비를 자식을 지켜주는 여인들의 빛이 되었다.

간절함이 닿으면 하늘도 감동한다 했다.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이 밝혔던 촛불이었다. 그런데 그 촛불이 세상의 빛이 되고자 광장으로 나왔다.

아이의 손에 청년의 손에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촛불은 한가지의 소원으로 춤을 춘다.

그렇게 뭉쳐진 촛불은 바람이 불어도 두렵지 않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타 오르고 있다.

국민을 보살펴 주어야할 지도자가, 수 백 명의 안타까운 죽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숨기기에 바쁘다. 국민을 대표하는 지도자의 1초는 국민이 우선시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엉뚱한 변괴만 늘어놓기에 급급하다. 자신은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변명만 한다. 한때는 추앙받던 대통령의 딸을 두고 누가 이런 지도자가 될 줄 알았을까. 그저 여인으로 공주로 우리 국민의 가슴에 남아 있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이제 국민들은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지도자를 믿지 않는다. 설사 백가지중에, 아니 천 가지 중에 하나가 진실이라고 밝혀진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린 지도자가 스스로 만든 자승자박의 벌이다.

오늘도 광장에선 촛불들이 꿈을 꾼다.

하늘의 별이 되어 빛나고 있을 안타까운 꽃송이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깜깜한 광장을 환하게 밝히는 수많은 촛불들이 하늘의 별들과 만나기를, 바람은 칼이 되어 촛불을 이리저리 가를지라도 끝내 더 활활 타오르기를, 그리고 광장에 모인 촛불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어머니의 비손은 겨울밤, 손돌이추위에도 미동 없이 그렇게 계속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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