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간 것들에 대한 변명
비켜간 것들에 대한 변명
  • 김희숙<수필가·원봉초병설유치원교사>
  • 승인 2016.12.01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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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김희숙

허리가 아파 눈을 뜨니 오전 10시다. 무려 10시간 동안 침대 위에 몸 도장을 찍었다. 함께 동침해준 요크셔테리어 두 마리에게 늦은 아침인사를 하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랜만에 누리는 휴일 아침의 여유다. 그간 친정 엄마의 병환으로 매주 주말엔 병원엘 갔었다. 석 달 만에 엄마가 퇴원을 하시자 내게도 주말의 여유가 찾아왔다. 밀린 빨래와 집안 청소를 하고 아점을 먹는다. 허기를 지우고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음악을 듣다가 난 내 맘이 시키는 대로 나를 맡겨본다. 한참 상념에 젖다 커피 한 잔을 타서 창가로 갔다. 창가에 의자를 놓고 시집을 뒤적이다 창밖에 눈을 걸어본다.

어느덧 찬바람이 수북하게 내려 앉아 빈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다.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건 듯 보이는 놀이터에 아이들 한 무더기가 놀고 있다. 햇살이 살점을 골고루 뿌려주고 있는 일요일 한 낮의 놀이터,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무성영화처럼 아득하게 흐른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뛰어 가는 아이, 비비총을 여기저기 쏘는 아이, 소리치며 깔깔깔 도망치는 아이.

도망치는 아이 꽁무니로 이리저리 흩어져 떨어지는 비비탄, 그 하얀 알맹이를 보며 여기저기 떨어져 흩어진 내 지난 시간들을 본다. 약국 창문에 서린 뽀얀 안개처럼 눈이 흐려진다.

난 왜 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난사하며 살았을까. 머릿속에 어루러기 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내 삶은 무엇을 맞추든 언제나 적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든 남들보다 한발 늦었다. 내게는 과녁이 너무 많았다. 한 개의 과녁도 맞추기 힘든 판에 여러 개의 과녁을 겨누었으니 빗나간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한때는 그것을 호기심이 많아서 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선택과 집중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온 날들이 나를 이렇게 돌아오게 만든 것이 아닐까.

대학을 진학할 당시 글을 쓰고 싶어 국문과를 택했다. 졸업 후 방송국에서 스크립터로 일을 하면서 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졌다. 전공을 바꿔 다시 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교사가 되었다. 유아교육대학원을 진학하고 나니 다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다시 국어교육대학원에 다녔다. 그리고 그제 서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선택과 집중을 잘 했다면 지름길로 갈 수 있었을 텐데 라는 후회와 아쉬움이 흩어지는 비비탄처럼 거리에 뒹군다.

그러나 가만히 창밖을 보다 드는 생각. 지름길로만 갔다면 많은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오솔길도 가고 골목길도 갔으니 그곳에 놓인 세세한 이야기들과 사물들을 볼 수 있었던 거라고. 조금 돌아왔지만 그건 많은 것을 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무엇이든 적중만 했다면 비켜간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오늘처럼 이것저것 눈을 떼어줬기에 놀이터도 흔들리는 나무도 볼 수 있었다고. 가만히 나를 토닥여 본다.

바람이 어깨를 펴고 찬 계절을 끌어 올리고 있다. 내게서 비켜간 것들이 과녁 없는 허공에 쏘아진 탄환으로 가득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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