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촛불에게
12월의 촛불에게
  • 김기원<시인·문화평론가>
  • 승인 2016.11.30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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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 김기원

어느새 12월이 왔어요. 별무리처럼 무리지어 출렁거렸던 11월의 촛불들을 부여안고서 말입니다.

아픕니다.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몹시 허탈하고 허전합니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의지할 남편도 물려줄 자식도 없고 두 동생들마저 청와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던 터라 정직하고 깨끗하게 나라를 이끌리라 기대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낱 아낙에 불과한 최순실의 사주를 받고 나라를 이끌었으니 그럴 수밖에요. 이를 알게 된 이 땅의 선남선녀들이 분노와 저항의 촛불을 든 것은 역사의 필연입니다. 11월은 그렇게 촛불혁명을 몰고 왔습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촛불의 숫자가 늘어 200만 명에 육박하는 민초들이 서울 도심과 전국의 크고 작은 도심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외쳤으니까요.

실망한 보수들 분노의 촛불과 이젠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진보들의 서슬 퍼런 촛불이 한자리에 모여 어깨동무를 했고, 좌도 우도 아닌 중도와 무당파들의 우국충정의 촛불과 이런 때가 오기를 학수고대했던 체제전복 세력들의 신바람 나는 촛불이 뒤엉켜 한목소리를 내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과 학기말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중ㆍ고등학생들까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었습니다. 이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 앞에 완강하게 버티던 박근혜 대통령이 백기 투항을 했습니다. 지난 11월 29일 자신의 운명을 국회에 맡겼으니까요.

꼼수든 진정이든 촛불들이 일구어낸 위대한 승리입니다.

경찰차에 올라가 난동을 부리는 시위꾼을 향해 `내려와'를 외치는 촛불들과, 시위대에 폭력 조짐이 보이면 `애국가'를 부르고 `비폭력'을 외치는 성숙한 촛불들의 아름다운 승리임이 분명합니다.

100만 명이 넘는 성난 시민들이 집결해 격렬한 시위를 벌였음에도 폭력과 최루탄이 없는 위대한 평화집회를 한국인들이 세계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지만 우리의 민초들은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세계만방에 떨쳤습니다.

이제 중·고등학생들은 더는 촛불시위에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촛불 대신 책을 들고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촛불숫자가 청와대와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 할 지라도 어린이와 중ㆍ고등학생까지 숫자놀음에 끌어들이는 것은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도 속상하고 열불이 나서 참여하는 것이지만 이번 국란은 기성세대와 정치권이 결자해지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합니다. 이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이 차기 대권에 대한 셈법에 눈이 멀어 우왕좌왕 중구난방 하는 사이에, 국가 경제와 안보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2016년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사가 좋을 리 없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맞이를 준비하는 12월이 왔는데도 뒤틀린 나라 사정 때문에 개인사까지 엉망진창이 되고 있어서입니다. 나라가 편해야 국민도 편하다는 걸 새삼 실감합니다. 지도자를 잘 뽑아야 나라도 사회도 개인도 평안하다는 걸 통감합니다. 차악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차선을 뽑는 선거가 되어야 성숙한 민주주의라는 걸 절감합니다.

그러므로 12월의 촛불들은 임기 말마다 되풀이되는 불행한 대통령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꾸는 혁명을 해야 합니다.

내쫓은 선장보다 더 형편없는 선장이 나타나지 않도록 룰과 제도를 촘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권과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지금의 정치권과 국회엔 희망이 없습니다.

12월의 촛불은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애국의 촛불, 건설의 촛불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촛불의 승리를 구가할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고단한 12월이 될 것 같습니다. 나라도 민초들도.

/시인·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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