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사은회!
굿바이 사은회!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11.30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지금은 대학졸업생이라면 `사은회'라는 말을 알 것이다. 졸업생이 교수들을 모시고 밥 먹는 일이다. 서당이라면 떡을 해와 `책거리'를 했을 테지만, 서구화된 대학에서의 우리식 풍습이었다. 대학 4년을 회고하는 자리니 의미도 있었다. 말이 4년이지 요즘 학생들은 군대 2년에 휴학 2년을 더하면 8년이나 되니, 감회가 깊은 행사였다.

사전적으로는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사은회(謝恩會)라고 쓰지만, 대학에서는 스승 사 자를 쓰는 사은회(師恩會)의 성격이 강했다.

문제는 사은회 비용이었다. 과거 심한 경우는 옷도 맞춰 입어야 할 정도로 호화스러웠고, 음식은 물론이고 스승에게 올리는 선물도 만만치 않았다. 하기야 사회에 나간다고 선언하는 자리니만큼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 당시는 대학졸업생도 많지 않았지만, 웬만하면 다들 갈 길을 찾아놓은 상태니 의례를 갖추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 반, 억울하다는 말 반, 그러나 크게 보아 즐거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오늘의 대학생은 졸업해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우리 같은 인문대는 졸업이 곧 실업이라는 자조가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고, 다른 전공도 50% 취업률을 맞추기 쉽지 않다.

그러니 교수의 자괴감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밥 사주고 술 사준 학생들인데 선물을 준다는 데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늘 사은회 선물을 없애자고 했다. 장소도 한정식집이 아닌 삼겹살집 같은 허름한 식당을 주장했다. 스승의 날에는 부끄러워 도망 다니는 내 입장에서는 자연스런 주장이었다.

그래도 선물을 해오면 “좋다, 2차 가자”는 것이 나를 포함한 일반적인 교수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의 감회에 나도 젖어보는 하루였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내가 바꾸고자 한 것이 아니라 법이 만들어지면서 행사의 내용도 바뀌었다. 김영란 법 때문에 학생들이 선물을 못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라는 게 마음이 묘하다. 하지 말라고 했을 때는 언제고, 김영란 법을 내세워 학생들이 하지 않는다고 하니 영 이상하다. 혹여나 학생들이 이참에 “잘 되었구나”하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싶어 전전긍긍한다. 고마워하는 마음도 없이, 정도 나눌 시간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것은 아닌지 쓸쓸하다. 내가 “선물하지 말라”고 학회장에게 그렇게 이야기할 때는 언제고, 졸업생이 막상 선물도 안 한다고 하니 “사은회 왜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 과는 전통적으로 학생들에게 사은회 때 밥값 정도는 보조해왔다. 이제 선물을 하지 않으니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만 받게 된 셈이 된 것이다. 학과를 맡고 있다 보니 이런 상황의 변화에 처음으로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풍속도가 될 계기라서, 고민 고민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졸업생들이 재학생을 위해 내놓는 장학금'이었다. 선물값을 모아 1인당 1만원이라도 좋으니 졸업동기회 이름으로 과에 장학금을 희사하면 좋은 전통이 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밥은 우리가 살 테니, 선물 대신 후배를 위한 장학금 어떤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강요가 될 것 같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학과에 장학금 내면 학과평가지표도 올라가는데.

이제 사은회는 역사 속으로, 아니 사전 속으로 사라지는 말이 될 것이다. 전공에 따라 많은 학과에서 이미 사은회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은회 대신 n포 시대를 사는 젊은 졸업생을 위한 `위로회'로 옮겨가고 있다. 몇 년 뒤에는 사은회가 뭐냐는 대학졸업생이 나올 것 같다.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