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에 빠지다
인지부조화에 빠지다
  • 이창옥<수필가>
  • 승인 2016.11.2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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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 이창옥

계절의 끝자락이다. 나무들은 월동 준비에 그동안 입고 있던 마지막 남은 옷을 떨궈 내느라 여념이 없다. 과한 욕심으로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과 달리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나무들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경이로워 고개를 숙이게 한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한 방송사에 의해 추악한 얼굴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 추악함의 끝이 어디인지 평범한 주부인 나는 감을 잡을 수도 없어 혼란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온 나라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열기로 뜨겁다.

52퍼센트의 믿기 어려운 득표율을 차지하고 올라선 자리였다. 지지하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감격하며 눈물을 보여 나를 당혹스럽게 한 내 친구도,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 역시 나라 살림을 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옆 가게 국밥집 할아버지의 맹목적 믿음도 옳은 선택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엄청난 득표율을 믿지 못해 친구에게 비난을 들어야만 했던 내 선택이 빗나간 선택이었음을 속 시원하게 증명해주기를 진심 바랬다. 그것이 내 선택에 대한 최선의 합리화였다.

심리학에 인지부조화 이론이 있다. 인지부조화는 어떠한 의사결정이나 행동을 한 후 이전의 신념, 느낌 가치들과 반대되는 정보를 들었을 때 겪는 갈등상태를 말한다.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대한 사람의 인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때, 그 부조화를 감소시키려 회피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심지어 옳지 못한 결정을 내렸을 때조차도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사실에 집착한다. 인지 부조화의 가장 큰 무서움은 잘못된 맹신으로 스스로 비판하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아집과 억지 부림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태도가 시간이 지나도 일관성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지금 전국에서 수십만 인파가 촛불과 피켓을 들고 청와대 문턱에 모여 한목소리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귀를 막고 인지부조화에 빠져 본인이 무얼 잘못했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는듯하다. 그로 인해 대통령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도 인지부조화의 굴레에 빠져 힘들어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보았다.

그들이 확고하게 믿고 선택한 신념이 모래성이었다는 걸 인정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일부는 더 분노하고 좌절하여 촛불과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 것이고, 무너져버린 신념을 인정하지 못해 아직도 대통령을 옹호하며 최순실이란 사악한 인간에게 대통령이 당한 것이라며 동정론을 펴는 순진무구한 사람도 있다.

인간이 매번 옳은 선택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옳지 못한 선택이라도 그들만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믿고 선택을 한 것이고 선택한 대통령이 잘해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을 터였다.

자신을 지지한 많은 사람을 위해서, 아직도 본인이 선택한 대통령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을 답답하지만 이 땅의 순진무구한 민초들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여 사죄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추악함으로 도배된 이 나라를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예의가 하야(下野)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쉽사리 가게 문을 닫지 못하고 텔레비전 뉴스로만 촛불시위를 바라보며 서성인다.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해 속을 태우는 내 모습이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인지부조화의 또 다른 단면은 아닐지 자괴감이 드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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