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카메라
감시카메라
  • 전현주<수필가>
  • 승인 2016.11.29 1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 전현주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다. 책상 위에 책은 펼쳐놓았지만 자꾸 창밖의 풍경으로 눈길이 간다. 움직이는 것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본능일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나 급히 뛰어 길을 건너는 고양이를 쳐다보게 된다.

이상하다. 사무실에는 분명 혼자뿐인데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설치한 감시카메라다. 그것 역시 내가 움직일 때 반응한다.

나는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을 다 들여다볼 수가 있다. 물론 그 화면 속에는 나도 있다. 카메라를 설치할 때만 해도 내심 전지전능해질 것을 기대했지만 나 또한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얼마 전 자외선을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자동차의 유리를 짙게 선팅 했다. 안에서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데 밖에서는 차 안이 검게만 보일 뿐인지 사람들이 나를 못 본 채 그냥 지나간다.

커다란 감시카메라가 생기고 나니 뜻밖의 쏠쏠한 재미가 생겼다. 차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삼아 동네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점잖기로 소문난 분이 길바닥에 거리낌 없이 침을 뱉고는 방귀를 뀌며 지나간다. 삼삼오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에 쓰레기를 던지고, 금실이 좋다고 자랑하던 부부가 차 옆에 멈춰 서서 한바탕 싸움을 한다. 급기야 이웃집 남자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더니 후미진 곳으로 들어가 벽을 향해 선다. 이쯤 되면 차라리 고개를 돌려야 한다.

우리는 왜 서로 감시하게 된 것일까? 나 외에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과 걱정이 감시카메라를 만들어 냈다면 자기 자신은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일까? 하긴 나부터도 남의 눈이 미치지 않으니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늘 내가 먼저 하던 인사는 물론이고 차에 타면 안전벨트부터 매던 습관도 어느 틈엔가 사라져 버렸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폐쇄회로 텔레비전의 화면을 되돌려 결정적인 장면을 다시 찾아볼 수가 있다. 어쩌면 그 능력은 태초부터 신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 일이 안타깝고 슬픈 사고였다면 냉정하게 반복 재생되는 화면 앞에서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다. 대부분 감시카메라는 기록을 따로 보관해놓지 않으면 저장용량에 따라 녹화된 순서대로 삭제되어 버린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기록들이 정말 그렇게 쉽게 사라져 버릴까? 위급한 소리를 감지하여 알려주는 인공지능 카메라까지 출시가 됐다지만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우수한 감시카메라는 여전히 가슴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각자의 양심에 녹화된다. 양심에는 한 사람의 일생이 모조리 저장된다. 그것은 용량이 방대하여 순차로 화면이 지워지는 일도 없고, 만질 수도 다시 꺼내 볼 수도 없어 기록을 조작하거나 삭제하기가 불가능하다.

지금 나를 지켜보는 카메라가 자꾸 거슬린다면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자. 나로 인해 마음이 아픈 사람이 있는지, 그래서 미안하거나 부끄러운지를 살펴보자. 만약 스스로 돌아보아 떳떳하지 못하거든 마음속에 있는 감시카메라를 의식해야만 한다. 나의 전 생애가 녹화된 양심카메라의 재생버튼을 내 손으로 직접 눌러야 하는 순간이 불시에 닥쳐올 수도 있으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