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 이지수<청주중앙초 사서교사>
  • 승인 2016.11.28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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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 이지수

사춘기를 뒤늦게 겪던 나는 대학에 진학해서도 한없이 예민하고 복잡한 심경을 지닌 아이였다. 늘`자퇴해야지'하면서도 결국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친구와 같은 학부에 진학했기 때문인 것 같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작가가 꿈이었던 친구를 따라 찾아간 곳이 학생회관 4층에 있던 교내의 한 동인회였다. 불안정하고 감정표현에 서툴렀던 나는 이곳에서 `시'를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시란 짧지만 그 속에 쓰인 구두점 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한없이 쓰고 지우고, 찢으며 알게 되었다.

선·후배 동인들과 매주 목요일 한 번씩 갖던 동인회 합평시간은 내 시가 공개된다는 부끄러움의 시간에서, 점차 시 속에서 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는 시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시를 감상하고, 왜 이런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던 일은 더는 청소년도, 그렇다고 어른도 아니었던 내가 조금은 웃자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함께 합평시간을 했던 동인들이 불쑥불쑥 그리워지고 생각나는 것은 그 사람들 본연의 모습을 좋아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 동인회에서 만난 사람이 오늘 소개할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의 저자, 길상호 시인이다. 다른 문학 장르의 모든 작가들도 그렇겠지만 선배는 특히 시를 쓰기 위해서 남들이 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말이 아닌 몸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해마다 봄이면 대청호에 있는 어부동이라는 수몰지구를 막걸리를 들고 찾아갔는데, 선배는 어부동 한참 이전에 버스에서 내려 걷게 하셨다. 버스를 타고 갔다면 차마 보지 못했을 길의 생김을, 풀을 그리고 꽃을, 하늘을 느린 걸음으로 마주한 느낌은 시골 태생인 내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흔하디 흔한 시골 풍경이 다음에 선배의 시에 담겨 주인공으로 등장했을 때, 그때 이 풍경에서 선배는 이런 감정을 느꼈구나 싶어지면서 스쳤던 모든 것들이 유의미해졌던 기억 말이다.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문학세계사, 2004)'는 길상호 시인의 등단 이후 첫 시집이다. 이외에도 많은 시집이 발간됐으나,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는 내게 유독 와 닿는 시들이 많다. 번지르르한 거창한 소재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것들에서 찾는 재발견과 희망과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국화가 피는 것은'이나 `감자의 몸'에는 존재감을 부여하는 끈질긴 생명력과 사물을 뒤집어 바라보는 시각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한다. 앞으로도 선배의 건필을 바란다.

코끝이 쨍한 11월, 며칠 전 동인회 현 소속인 재학생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매년 일 년에 두 번 전화가 온다. “저희 시화전 해요. 오실 수 있으세요?”, “저희 출판기념회 해요. 혹시 시 쓰신 것 있으세요?” 차라리 못 간다, 안 썼다 결단을 내려서 속 시원히 대답해주면 좋겠지만, 내 마음은 늘 그 반대인지라`상황을 봐서'라는 도돌이표 대답을 또 하고 만다.

난 이제 시를 안 쓴지 십여 년이 훌쩍 넘었으며, 행사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것이 언제 즈음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지금쯤 무슨 준비를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을지를 다 알아 마음은 늘 동아리 방으로 향하곤 한다. 시를 통해 세상과의 괴리를 좁히고, 자신과 타인의 존재감을 느끼고, 무엇보다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꾸준히 시를 쓰는 그들에게, 너희 정말 멋지다고 소리쳐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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