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
겨울 밤
  • 김태봉<서원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6.11.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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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 김태봉

늦가을 낙엽이 여기저기 흩날리면 쓸쓸한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낙엽마저 사라져버린 겨울에는 쓸쓸함 보다 더 견디기 힘든 적막함이 밀려들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적막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집 마당이다. 나무는 잎이란 잎이 모두 떨어져 텅 비었고, 낙엽마저도 쓸려가 보이지 않는 마당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떠할까?

조선(朝鮮)의 시인 황경인(黃景仁)은 겨울밤에 텅 빈 마당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

겨울 밤(冬夜)

空堂夜深冷(공당야심냉) 텅 빈 집 밤 되니 더욱더 썰렁하여
欲掃庭中霜(욕소정중상) 뜰에 내린 서리나 쓸어보려 하였다가
掃霜難掃月(소상난소월) 서리는 쓸겠는데 달빛 쓸어내기 어려워
留取伴明光(유취반명광) 그대로 밝은 빛과 어우러지게 그냥 남겨두었네


시인이 머무는 집이 텅 빈 것은 겨울만이 아니었을 테지만 춥고 낙엽마저 사라진 겨울인지라 텅 빈 느낌이 더욱 도드라졌을 것이다. 거기다가 밤이 되니 날은 몹시 추워졌고 그래서 시인 홀로 있는 집이 더욱 허전하게 보였을 것이다.

공허함을 못 이긴 시인은 마침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을 쓸어 볼 생각이었지만 마당에는 딱히 쓸 만한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은 이미 쓸어낸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시인의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바로 하얗게 내린 서리였다.

시인은 빗자루를 들고 서리를 쓸려고 하다가 문득 멈추었다. 마침 서리에 달빛이 비치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서리를 쓸어낸다고 해서 그 위에 비치는 달빛이 쓸릴 리는 없었다.

달빛만 놔두고 서리를 쓸어내면 달빛은 어울릴 상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생각이 이에 미치자, 시인은 서리 쓸기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자신이 쓸쓸한 처지이기 때문에 어울릴 짝을 잃은 달빛의 쓸쓸함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적막하기 그지없던 겨울밤의 마당은 이제 더는 적막하지 않다.

차갑긴 하지만 서리도 엄연히 시인을 찾아온 손님이고, 공중에서 비치는 달빛도 반가운 손님이다.

자칫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을 뻔했던 서리가 한순간에 귀한 존재가 된 것은 바로 달빛 때문이고 동시에 시인의 빼어난 감성 덕이기도 하다.

나뭇잎마저 모두 사라진 겨울은 적막하기 쉽다. 그러나 겨울 풍광도 가만히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면, 얼마든지 정감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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