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들의 고양이
쥐들의 고양이
  • 이영숙<시인>
  • 승인 2016.11.2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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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 이영숙

나라 안이 끓고 있다. 아이들로부터 어른까지 자드락비를 맞은 나무들처럼 거센 파동이다. 몽골 설화 `팥죽할멈과 호랑이'를 읽은 아이들이 팥죽할멈을 열심히 농사지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으로 상징하고 호랑이는 어마어마한 힘을 이용해 남이 농사지은 팥은 물론 목숨까지 위협하는 권력가로 비유한다.

`깊은 산골에 팥죽할멈이 팥밭을 매고 있다. 그런데 호랑이가 나타나 잡아먹으려고 하자 할머니는 추운 동짓날 팥죽이나 실컷 먹고 잡아먹으라며 시간을 번다. 동짓날이 되자 할머니가 훌쩍훌쩍 울면서 팥죽을 쑤는데 알밤, 자라, 맷돌, 멍석, 지게들이 나타나 팥죽 한 그릇 주면 호랑이가 못 잡아먹게 해준다고 한다. 호랑이가 나타나자 알밤은 호랑이의 눈을 찌르고, 자라는 앞발을 깨물고, 맷돌은 머리를 때리고, 멍석은 넘어진 호랑이를 둘둘 말고, 지게는 번쩍 지고 강물로 가 빠트린다.'

팥죽할멈은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 부모님들이고, 호랑이는 최순실과 그의 악당들, 알밤, 자라, 맷돌, 지게는 자신들이라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아이들 앞에서 얼굴이 뜨겁다.

한 빛깔로만 늙어갈 수 없는 거물 도둑들을 잡겠다고 정의의 사자들이 직접 맷돌을 돌리기 시작했다. `팥죽할멈과 호랑이'의 대결들이다. 무시무시한 힘을 휘두르며 약자들의 재물과 목숨을 위협하는 비겁한 호랑이를 대적하고 위기에 놓인 팥죽할멈을 구하기 위해 알밤과 자라가 움직이고 고전처럼 잠잠하던 맷돌과 지게가 움직였다.

이참에 진시황대의 환관 조고의 위세에 눌려 사슴을 가리켜 말(지록위마)이라고 동조한 부패한 벼슬아치와 이쪽저쪽 정계와 재계의 거뭇거뭇한 빛깔들도 찾아내어 단죄해야 한다. 물론 제 살림하느라 바빠 나라살림 대리인으로 세운 대표자들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우리의 관리소홀 먼저 반성해야 한다.

남이 애써 농사지은 팥을 빼앗고 목숨을 위협하는 엄청난 호랑이를 지혜와 협동으로 물리친 팥죽할멈과 맷돌, 멍석이 바로 우리 민족성이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교훈이지만 실패도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자산이다. 무엇보다 외신기자가 평가한 문맹률 1% 미만인 나라, 평균 IQ 105가 넘는 유일한 나라, 노약자 보호석과 여성부가 있는 나라, 세계 봉사국 4위인 나라,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한 근성이 있는 나라 바로 대한민국 우리나라다.

숲이 조용하다고 짐승들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두 번 다시 쥐들은 쥐들의 대표로 고양이를 뽑지 않을 것이다.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얼룩 고양이 서로 번갈아가며 쥐구멍의 크기와 쥐들의 속도 제한만을 조절하는 강자 공약에 슬그머니 넘어갈 어진 민중은 다시없다. 대중지성과 선한 양심들이 분노한 정의의 파노라마가 잘못된 관행을 척결하고 새롭게 포맷한 트랙위에 새로운 가치들을 기술할 것이다.

새벽이 겨울 안개를 가르고 경주마처럼 달려온다. 수만의 촛불이 하얀 불꽃으로 파도치던 밤, 된서리 맞아 노랗게 익은 모과도 달덩이처럼 환했다. 빛깔로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간밤엔 책 한 장 넘기지 못했다. 된서리로 익고 단단해지는 것들도 있으니 때론 고난도 스승이다. 이제 좁은 창문을 닫고 대문을 활짝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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