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인연
  • 박경희<수필가>
  • 승인 2016.11.2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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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 박경희

이 세상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랑해주기 왠지 애매한 사람들이 있다.

속이 아주 투명해서 한낮의 유리창처럼 환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음흉하게 숨기지 않기 때문에 그 얼굴만 바라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환히 알 수 있다.

순수하고 꾸밈이 없으며 그리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순수를 다 드러내었다가 흔히 그 상대방에게서 먼저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속이 투명한 사람들은 사랑도 이런 식으로 해서 흔히 사랑이 떠나버린 후에 상대방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후회하며 더 많이 그리워하고 더 많이 힘들어하곤 한다.

그리고는 타인에 대해 마음의 빗장을 꼭꼭 걸어 잠그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유리상자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이 아무리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어도 그들에게 자꾸만 마음이 쏠린다.

문을 결코 열지 않겠다는 다짐은 울기도 쉽게 울고 상흔도 꽤 큰 사람들이라 나도 모르게 엄마가 아기 안아주듯 꽈악 안아주고 싶고 다독여주고 싶고 한껏 사랑해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진짜로 속이 검은 장막으로 꼭꼭 둘러싸여 있는 사람들도 있다.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꽤 많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이 앞에서 웃고 앉아 있어도 도무지 그 머릿속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이들에게서 깊고도 진실한 사랑을 느끼는 일을 기대한다는 것은 글쎄, 일생에 단 한 번이나 겨우 찾아올까. 아예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뭐랄까. 사랑해주고 싶거나 정을 느끼기에는 왠지 애매하고 뭔가가 시원치 않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개인적으로 속이 유리상자처럼 투명하고 영혼이 순수해서 함께 있으면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그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어린애같이 맑은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참 좋다.

우리가 태어나 성장하고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스치고 공유하며 엇갈리거나 지나치는 인연들은 참 많다. 그중에 정말로 마음과 생각이 유리 속처럼 환하고 투명하며 나와 꼭 같아서 집에서 혼자 생각만 하고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나오고 만나면 왠지 아기처럼 꼬옥 안아주고 싶으며 울면 눈물도 닦아주고 싶고 아프면 약 바르고 붕대 매서 싸매주고 싶은 그런 사람들은 몇 안 된다.

나 또한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인연이고 싶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 역시 내게 그런 인연으로 오래 기억되었으면 참 좋겠다. 비 오거나 안개 낀 밤, 축축한 전철역 앞을 지나다가 아무 사심없이 괜히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싶어서 이리로 나와라 불러낼 수 있는 인연.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다가 그가 울면 나 또한 얼싸안고 함께 엉엉 울어줄 수 있는 인연. 살다가 간혹 밀물처럼 밀려드는 예기치 못한 슬픔에 빠져 내 안의 우울 속에서 좀처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마냥 허우적거릴 때 어디선가 날아와 내 귓가에 입대고 나지막이 소리내어 흘러간 팝송 하나 멋들어지게 불러제껴 그토록 온몸을 휘몰아쳤던 내 슬픔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 버리게 해주는 인연.

그런 인연은 우리가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그리 쉽게 만나지는 인연이 아니면서도 어쩌다 한 번 어렵사리 만난 후에는 죽을 때까지 여간해서 쉽게 변색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맘 편하고 전혀 부담 없는 그런 인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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