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앉아 계신다
그분이 앉아 계신다
  • 정명숙<수필가>
  • 승인 2016.11.2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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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정명숙

도심 한가운데서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건 축복이다.

수북하게 쌓인 노란 은행잎과 단풍나무의 붉은 잎들은 물기가 말라가면서도 본연의 색을 간직하고 있다. 저무는 일이 사람도 저리 고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단풍은 노인들의 무채색 옷과 대조를 이룬다.

한 계절을 편집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 사무실이 중앙공원 옆이라 힘은 들어도 멀리 가지 않아도 가을을 만끽할 수 있으니 그 또한 호사다.

그날도 공원에 내려앉은 가을을 밟으며 점심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쌀쌀해진 날씨에도 단풍을 배경으로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윷놀이를 하는 할아버지들이 먼저 눈에 띄였다.

할머니를 찾으려면 고개를 좌우로 돌려야만 몇 분을 볼 수 있는데 한 분이 보였다. 흰색의 스티로폼 방석을 깔고 앉아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는 할머니를 보자 함께 가던 문우께서 아주 신기한 일을 겪었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맞어, 저분이야. 아침에 내가 봤던 그분이네!”

차가 없는 문우께서는 늘 버스를 탄다. 그날도 버스에서 내려 공원을 지나 사무실을 향하는데 우연히 그분과 어느 남자노인과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단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했어도 남자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는데 그분은 다 안다는 듯이 말하더란다.

“처음인가 봐요.”

소문으로만 듣던 이야기를 직접 목격했으니 공원에서 벌어지는 노인들의 성매매가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오래전이었다. 동네아주머니가 공원에서 그분과 같은 일을 하는 걸 알게 되었다. 병석에 누운 남편과 자식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핑계를 댄다 해도 여자가 할 수 있는 많은 일 중에 그 일밖에 없었을까. 그때는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머니가 안쓰러워졌다. 아내와 어머니라는 자리를 책임지기 위해 그 자리를 버릴 때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었다. 사랑 없는 행위는 그저 노동이라고 치부해도 처음엔 무척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와 같이 그분에게도 그럴만한 사연은 있을 터이다.

언제부턴가 공원은 노인들의 만남과 놀이의 장소로 변했다. 어쩌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재잘대며 사진 찍던 추억이 떠올라 잠시 의자에 앉아보고 싶기도 하나 왠지 의도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그분으로 오해받을까 걱정하는 내가 지나친 것일까.

그분은 오늘도 변함없이 차가운 벤치 위에 흰색 스티로폼 방석을 깔고 앉아있다.

가슴속에 담겨 있는 가시 같은 사연들을 꾹꾹 누르며 잎을 떠나보낸 나무처럼, 쓸쓸한 누군가의 삶에 단풍처럼 노란 꽃을, 그리고 붉은 꽃을 피워주려 기다리고 있다. 겨울이 와도 그분은 그곳에 앉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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