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 산다는 것
아버지로 산다는 것
  • 김규섭<청주시립도서관 운영팀장>
  • 승인 2016.11.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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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 김규섭<청주시립도서관 운영팀장>

며칠 전 살던 집이 계약만료 되어 바로 옆 동네로 이사했다.

전세로 이사하자니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도 그렇고 말씀을 안 드리면 나중에 서운해 하실 것 같아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네 가족들과 식사라도 함께할 생각에 이사하는 날 점심때에 맞춰 오시라는 연락을 드렸다.

아내와 이방 저 방을 정리하다 보니 동생네 가족이 부모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우선 급한 대로 동네 음식점에 자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시키고 음식이 도착하여 먹으려 하는데 아버지가 보이질 않았다. 어머니와 동생네 가족들 먼저 식사를 하라고 하고 밖으로 나가 아파트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아버지가 등나무 아래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깜짝 놀라 무슨 일 있으시냐고 물어보니 아버지께서는 눈물을 훔치시며 “애비야. 니가 이사를 한다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 데 나는 하나도 기쁘지가 않구나!”라고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 왜 그러세요. 저번에 살던 집보다 교통도 좋고 햇볕도 잘 들어 나는 좋은데요. 집사람도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부자는 그렇게 한참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왜 모르겠는가, 아버지 마음을. 나이 오십 넘어 집 한 채 없이 이리저리 떠돌며 사는 큰 자식이 안쓰러워 그러신다는 것을, 큰 자식 이사하는 날, 돈이라도 보태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아무런 도움 줄 수 없는 당신의 처지가 한스러워 그러신다는 것을, 큰 자식이 되어 집 없이 산다는 것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큰 슬픔이고 아픔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돌아보니 아버지의 삶도 참 고단했다. 30대에 홀로되신 할머니 대신 몇 마지기 안 되는 농사일 도맡아 하시면서 동생들 돌보느라 정신없이 사셨다.

가끔 아버지 손을 잡으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고초와 나이가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농사일밖에 몰랐다. 그러다 보니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사셨다.

약주라도 드시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온 가족이 비상이었다. 저 멀리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족과 세상을 모두 잃은 패잔병 같았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집에 오셔서도 아버지는 이 노래를 밤새도록 부르다가 잠이 들곤 하셨다. 이 무렵 아버지도 지금의 나처럼 쉰의 언저리에서 숨을 고르고 계셨던 것일까? 아버지보다 못한 쉰을 살아가고 있기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 나이 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살아오면서 나는 아버지 우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내 기억 속에 아버지는 울지 않으셨지만 한 사내는 평생을 울었다. 힘들어 논밭에 쓰러져서도 울었고, 아내의 가슴에 파묻혀서도 울었다. 자식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울었고, 등에 짊어진 무게가 힘겨워서도 울었다. 아버지 나이 쉰에는 내 나이 쉰보다 더 크게 울었다는 걸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았다.

“애비야 뭐하니! 원용이는 잘 있니? 술 조금만 먹어라! 우리 걱정은 하지 말거라! 니들 잘살면 그것으로 된 거란다.” 수화기를 타고 한결같이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리운 아침이다. 아버지는 평생 자식을 위해 사셨는데 나는 지금도 나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고 있으니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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